작성일 : 08-08-0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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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닦는 천사’
경기도 수원시 화서역 출구에서 '구두종합병원'을 하는 이재균(45)씨. 말이 종합병원이지 한 평(3.3㎡) 남짓한 공간에서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게 전부다. 이씨는 3년 전부터 구두 한 켤레 닦을 때마다 500원씩을 떼어 깡통에 집어넣는다. 희귀 난치병 환자 돕기 성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그는 이 돈을 차곡차곡 모아 희귀 난치병 질환자 돕기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방송사에 기부한다. 그동안 하루에 3000∼4000원씩 모두 300만원 넘게 기부했다.
이씨는 시흥시에서 25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산다. 이 가운데 1500만원은 은행 대출금이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한푼이 아쉬운 상황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금을 모으고 있다. 기부금을 빼면 한 달 수입은 100만원 정도다.
화서동 주민들은 그를 '구두 천사' '구두 마술사'라고 부른다. 구두가게 한쪽엔 '구두 닦은 요금 2500원 중 500원은 난치병 환자 돕기 성금으로 사용하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주민들의 도움 없인 이런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많은 동네 분들이 이 문구를 보고 닦지도 않을 구두를 닦고 간다”고 그는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3000원을 내고 '좋은 일에 쓰라'며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씨가 성금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수원역 매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다 2000년 그만둔 뒤 화서역에 연 구두가게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때였다. 명색이 사장(?)이 됐는데 힘들더라도 좋은 일을 하면서 살자는 아내 진양옥(39)씨의 권유도 한몫했다. 아내는 '건선'(만성 피부질환의 일종)이라는 선천성 난치병 환자다.
“열이 40도까지 올라가고 숨쉬기도 힘들어 하는 아내를 제대로 치료조차 해주지 못한 적이 있었지요. 당시 주변의 도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씨는 동네 주민들이 발에 안 맞아 못 신거나 싫증이 나 버려둔 신발을 싸게 사서 수선해 팔고 있다. 일명 '아저씨 표' 구두다. 가격은 3000원이다. 수선비만 받는 셈이다. 손님에 따라 1000원을 받기도 하고,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는 공짜로 선사하기도 한다. 주민 진보람(22·여)씨는 “아저씨 손을 거친 구두는 명품 구두로 새롭게 태어난다”고 전했다.
그의 구두가게는 만물상으로도 통한다. 헌 우산과 지하철 노선도, 구부러진 못, 벌레에 물렸을 때 바르는 약 등으로 빼곡하다. 화서역을 이용하는 주민들을 위한 물건들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헌 우산을 빌려주고, 고장 난 우산을 가져오면 무료로 고쳐 준다. 구두 굽을 갈 때 나오는 헌 못은 모아뒀다 고물을 팔아 생활비에 보태는 환경미화원 아저씨에게 주고 있다. 이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고 내가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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