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08-2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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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는 향기를 풍기며 옵니다. 고통 없이 자정은 불가능합니다”
법조계의 두터운 신망을 받는 ‘고참’ 법원장이 최근 법조비리 사태와 관련해 솔직한 ‘자성의 글’을 올린 사실이 20일 공개돼 눈길을 끈다.
이우근(57ㆍ사법시험 14회) 서울중앙지법원장은 법원 내부통신망에 띄운 A4 용지 1장반 분량의 ‘부패의 향기’라는 글에서 “손바닥 뒤집듯 쉽게 이뤄지는 자기 정화는 없다. 치열한 자성을 통해 새로운 인격으로 태어나는 출산의 고통 없이 올곧은 자정은 불가능하다”고 법조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부패는 악취가 아니라 향기를 풍기며 다가온다. 부패의 유혹 앞에는 장사가 없다. 명철한 지식인도, 시민운동가도, 근엄한 종교인이나 법조인 마저도 예외가 아니었다”면서 “지속적이고 습성화된 부패의 경향은 타락의 사슬로 영혼을 옭아매기에 자기 정화는 그토록 어려운 법이다”고 운을 뗐다.
그는 “사정 책임자가 독직 사건으로 추락하는가 하면, 부동산 투기를 다스리던 공직자가 강남 금싸라기 땅을 은밀히 사고 팔다가 패가망신을 했다. 유명 성직자가 거액의 외화를 밀반출하다 체포되기도 했고 학생들의 커닝은 엄단하면서 자신은 타인의 논문을 베낀 표절교수까지 등장했다”고 현 세태를 꼬집었다.
특히 이 법원장은 법관들의 부패를 강하게 질타하고 철저한 자기반성을 촉구했다.
그는 “부패와 비리를 다스리는 법조인이 스스로 비리를 저지르거나 부패에 젖어드는 일은 여간 심각한 부조리가 아니다. 재판 임무를 부여받은 법조인이라면 시대의 아픔과 이웃의 괴로움을 온몸으로 함께 나누는 사랑의 소명의식, 그리고 투철한 자유의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언급하며 “셰익스피어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준법정신이 투철한 모범시민으로 그렸다. 그러나 샤일록은 남의 곤궁함을 존중하지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관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랑을 알지 못했다. 남을 존중하고 타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법조인이라면 남의 비리를 벌하면서 자신의 부패에 눈감을 리 없다”며 법관의 소명의식과 윤리의식을 강조했다.
또 그는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 진리를 볼 수 없고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마음으로는 사람을 알 수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인용해 후배들에게 “소송기록에 파묻혀 밤낮없이 합법성을 탐색하는 법조인들이지만 법정의 울타리를 넘어 지혜를 찾으라”고 충고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서울중앙지법원장과 서울행정법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이 법원장은 최근 신임 헌법재판관으로 법조계 후배들이 지명되자 용퇴를 결심하고 사표를 냈으며 23일 퇴임식을 갖는다.
그는 “오랫동안 몸담은 법원 조직과 후배들의 발전을 바라는 진심어린 당부의 말이지만 퇴임사에 담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아 통신망에 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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