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적시는 생명의 우물

캄보디아에 1000개째 시주한 지구촌공생회 월주 스님
 
 지구촌공생회 월주 스님이 두레박으로 뜬 우물물을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부어주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집 앞 웅덩이의 흙탕물을 식수로 쓰고 있는 캄보디아 농촌 여성.
 
 
캄보디아는 가난한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320달러에 불과하다. 1975~79년 있었던 ‘킬링필드’로 무려 20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 당시 폴 포트 정권은 교사·지식인·종교인 등 글깨나 읽는 사람들의 씨를 말렸다. 그 후유증이 지금도 남아 있다. 수도 프놈펜에서 떨어진 시골에 가면 문맹률이 무척 높다. 글 읽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게다가 농부들은 환경과 가난이 빚어낸 ‘죽음의 물’을 수천 년째 내려오는 관습처럼 마시고 있었다. 그런 땅에 지구촌공생회(이사장 송월주 스님)가 1000개째 ‘생명의 우물’을 팠다.

◆누런 흙탕물 마시는 사람들=12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버스로 4시간을 달렸다. 캄폿주의 ‘리웁’이란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는 우물이 아예 없었다. 물론 수도 시설도 없다. 대신 집집 마다 커다란 웅덩이가 하나씩 파져 있었다. 집주인 솝사렌(49·여)은 그릇으로 웅덩이 물을 떠다 직접 마셨다. 누런 흙탕물이었다. 그는 “우기 때 빗물을 항아리에 받아두었다가 건기 때 식수로 쓴다. 그 물이 다 떨어지면 지금처럼 웅덩이 물을 마셔야 한다. 수시로 배앓이를 하고 피부병도 생긴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연중 7개월이 우기(4월~10월), 나머지 5개월이 건기(11월~3월)다. 지금은 땅이 쩍쩍 갈라지는 건기다.

농촌의 집집 마다 처마 끝에 대형 장독 서너 개씩 놓여 있었다. 빗물을 담아둔 물항아리였다. 현장을 찾은 지구촌공생회 전근수(59) 미얀마·캄보디아 지부장은 “물항아리 하나가 10~20달러다. 도시 근로자 월급이 약 30달러다. 캄보디아 농촌에선 엄두를 내기 힘들만큼 비싼 물건이다. 그래서 시골에선 물항아리가 ‘부(富)의 척도’가 된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농촌은 물 사정이 거의 비슷하다. 웅덩이물을 마시고 장티푸스나 피부암에 걸리는 사람도 많다. 오염된 식수로 인한 영·유아 사망률도 꽤 높다. 그런데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 상수도 시설은 큰 도시에만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웅덩이 물은 끓여서 먹기도 쉽지 않다. 산이 적은 나라라 나무도 귀하다. 농촌에선 마실 물을 끓이는데 나무를 쓸 형편도 안 된다.

◆1000개 째 생명의 우물=이런 실정을 알고 국제개발구호NGO인 지구촌공생회가 나섰다. 2004년부터 지금껏 캄보디아 농촌에 무려 1000개의 우물을 팠다. ‘1000번째 생명의 우물’은 자심고등학교 교정에다 세웠다. 11일 월주 스님(75·전 조계종 총무원장)과 캄보디아 시즈파가 농촌개발부 장관, 이경수 주 캄보디아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1000번째 생명의 우물 완공식’이 열렸다.

학생들은 환하게 웃었다. 월주 스님은 두레박으로 직접 물을 펐다. 그리고 학생들의 손에 부었다. 이 학교에도 물이 없었다. 학생들은 각자 마실 물을 집에서 가져와야 했다. 1000번째 우물을 기증한 송명례(72·여)씨도 행사에 참석했다. 송씨는 “현지 학생들 표정을 직접 보니 감격스럽다.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신다고 해서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물 한 기당 소요 비용은 약 70만원이다. 캄보디아 시골에선 엄청난 액수다.

수도 프놈펜에서 약 140㎞ 떨어진 무롱 마을에도 갔다. 지구촌공생회에서 두 달 전에 우물을 판 곳이다. 마을주민 상스룬(48·여)은 “전에는 1.5㎞ 떨어진 사원에 가서 물을 길어왔다. 자식이 다섯이라 물항아리가 늘 부족하다. 건기가 올 때마다 걱정이 많았다”며 “집 앞에 우물이 생긴 뒤에는 그런 걱정이 싹 사라졌다. 아이들이 열 나고 설사하는 일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구촌공생회는 올해 말까지 캄보디아에 250개의 우물을 더 팔 계획이다. 지금껏 팠던 우물의 수질검사 등 이용실태 점검도 강화할 작정이다. 월주 스님은 “처음에는 우물을 파도 사람들이 계속 웅덩이물을 먹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제발, 우리 마을에 우물을 파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고 말했다. 12일 월주 스님은 캄보디아 불교계의 종정이자 왕사인 텝봉 스님을 만나 ‘생명의 우물 사업’에 대한 환담을 나누었다.

프놈펜(캄보디아) 글·사진=백성호 기자

◆월주(月珠) 스님=1980년과 94년, 두 차례에 걸쳐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 영화사와 김제 금산사의 회주다. 지구촌공생회 이사장을 맡으며 국내외의 소외된 이웃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