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아이들 위해 사랑의 자장면 요리 
 
성북구 태양반점 최길호ㆍ김진아씨 부부
 
 
서울 하월곡동에 있는 `태양반점` 출입문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가게 안에도 형형색색 반짝이가 걸려 있었다. 주인 최길홍 씨(39)와 김진아 씨(36) 부부는 "어린 손님들이 좋아해 작년 겨울에 꾸몄다"고 했다. 부부가 말하는 `어린 손님`은 부모가 없거나 할아버지ㆍ할머니와 사는 한동네 결손가정 아이들.

남편 최씨는 "단무지로 자장면 그릇을 싹싹 닦아가며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해 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언젠가 한 남자아이가 늦게 도착해 탕수육을 먹지 못했다. 이미 깨끗하게 비어 버린 그릇을 보자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최씨는 "탕수육이 얼마나 흔한데 그렇게 우느냐"고 아이를 달래고는 그 아이만을 위한 특제 탕수육을 만들어줬다.

부부는 처음에는 노인정 어르신들께 싼값에 자장면을 배달해 드리다 동네에 굶는 어린이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 아이들이 불쌍해 자장면을 공짜로 만들어주게 됐다.

넉넉해서가 아니다. 최씨는 23세 때 서울 종암동 한 중국집 종업원으로 취직해 일을 배웠고 결혼 후 가게를 낼 때는 돈이 없어 셋방을 빼고 가게 안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내는 배달을 맡았고 만삭이 됐을 때도 설거지 등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최씨는 "집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이라고 나아진 것도 없다. 재료비는 계속 오르는데 가격을 오히려 낮춰 받아 남는 게 없다. 4000원 하는 자장면은 2500원, 4500원 하는 짬뽕은 3500원이다. "다들 어려운데 싸게 드려야지요" 하는 이들 부부.

"어릴 때 먹던 자장면 한 그릇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그런 기억마저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들이 아이들에게 진정 건네려 했던 것은 희망이었다.

■ 서울 옥수 달동네 순대집 아지매 함영희씨　

"어르신들에 국밥 공짜…베푸는게 그저 좋았죠"

 

 
 
 
 
= 서울 옥수동 제13 재개발구역에 있는 20평 남짓한 가게 `함흥찹쌀순대`. 주인 함영희 씨(63ㆍ여)가 창밖을 바라보다가 뭔가 발견한 듯 밖으로 뛰쳐나간다. 잠시 후 폐지 줍는 노인을 데려와 탁자에 앉힌 뒤 "추우실 텐데 드시고 몸 좀 녹이세요"라며 뜨끈뜨끈한 국밥을 내놓는다. 이 구역은 좁고 가파른 언덕 계단을 숨이 턱까지 차도록 올라가야 나오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다. 그 꼭대기에 위치한 함씨 국밥집은 탁자가 6개, 꽉 차야 20명이 겨우 앉을 정도로 비좁다. 그렇지만 이 동네에서 힘들게 사는 노인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제일 넓은 가게다.

한 달에 몇 명이 무료로 국밥을 먹으러 오느냐고 묻자 "대여섯 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던 이웃 김가림 씨(40)가 "에이 참, 지나가는 어려운 사람들까지 다 끌고 오면서 무슨 소리예요"라고 말을 보탠다.

몇주 전 만난 60대 할아버지는 아직도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일회용 그릇에 수저를 챙겨 "식사라도 하시라"며 순댓국을 싸 드렸더니 얼마나 굶었던지 길가에 바로 쪼그리고 앉아 허겁지겁 먹는 할아버지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하루에 팔리는 양은 200그릇 남짓. 손바닥만 한 가게 치고는 많이 나가는 편이다. 하지만 이 중 몇 그릇이 공짜국밥인지 함씨 외에는 누구도 모른다. 티 안 나게 똑같이 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 남매를 키우면서 고단한 삶을 살았다. 30년간 호떡장사, 봉제일 등 안 해 본 게 없다. 10년 전 지금의 가게를 열고부터 밥술이나 뜨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철거가 진행되면서 손님도 줄었다. 함씨는 "곧 다른 곳으로 가게를 옮겨야 하는데 갈 곳을 정하지 않아 막막하다"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