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2-2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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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富貴榮華)는 참 아름다운 말이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몽유도원(夢遊桃源)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벌거벗은 욕망의 표현이 공공연한 덕담(德談)으로 통용되는 세태는 아무나 부자가 되기 어려운 현실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 "부자 되세요"라며 남에게 하는 말도 이중적이다. 솔직히 인생유전(人生流轉)의 운명을 거부하고 한방에 '인생역전(人生逆轉)'을 바라는 자신에게 거는 최면(催眠)이다. '대박'을 유혹하는 로또 복권 광고 카피가 인생역전이 아니던가.
그런데 요즘 우리는 일확천금(一攫千金)의 동의어로만 여겼던 인생역전에 실은 피와 땀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 깨달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 덕분이다. 이상화는 출국에 앞서 달력의 2월 16일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고 '인생역전!'이라고 썼다. 그녀는 "나도 김연아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야 말겠다"면서 설움과 오기를 담아 '인생역전!'이란 주문을 자신에게 걸었다. 그녀의 인생역전에선 170㎏ 바벨도 들어 올린 고된 훈련의 단내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훈련을 이겨냈다. 그녀의 '인생역전!' 주문은 기복(祈福) 신앙이 아니었다. CF송으로 방송을 탄 마법 주문 '비비디바비디부'를 경쾌하게 흥얼거린 신세대의 자기긍정이었다.
스마트폰 혁명을 주도한 스티브 잡스도 경쾌한 인생역전 신화의 주인공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 최초 개인용 PC 애플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경쟁사 IBM에 역전당해 해고됐다가 극적으로 복귀했었지만 췌장암 판정을 받아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아이폰 혁명을 일으켰다.
잡스의 인생역전 이후 정보통신산업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통신업체의 기득권이 무너지고, 개발자 중심의 소프트웨어 개발이 활성화됐다. 인터넷 콘텐츠 장터인 '앱스토어'라는 신조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인생역전의 신화를 쓸 수 있는 지평이 넓어졌다. 잘하면 청년창업이나 베이비붐 세대의 제2인생 성공신화가 만개(滿開)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와 업계가 모바일 IT 벤처기업에 5000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1인 창조기업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인터넷 시대에는 집단지성(集團知性)이 득세했지만, 스마트폰 시대에는 엘리트주의와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스티브 잡스 경제학이 더 통한다고 뉴욕 타임스는 풀이했다. 한쪽으로 쏠리는 집단지성의 평등주의가 아니라 똑똑하고 창의적인 개인의 능력이 가치를 창조하는 시대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아직도 창의성을 죽이는 객관식 문답 교육에 머물러 있다.
유선 인터넷 강국인 한국이 스마트폰 혁명 여파로 무선 인터넷 후진국으로 역전당할지도 모르게 됐다. 압축성장을 겪은 우리는 인생역전의 승자(勝者)만 추종해왔다. 빈곤의 늪에서 인생역전에 성공한 우리 사회는 어느덧 헝그리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 정신의 부활이 절실한 때다. 물론 헝그리 정신도 진화(進化)해야 한다.
'Stay hungry, Stay foolish'(계속 갈망하고, 계속 우직해라)라고 한 스티브 잡스의 헝그리 정신은 창조적 유희 정신에 가깝다. 동계올림픽에서 이상화와 모태범 등 '서울올림픽둥이'들이 그런 21세기 헝그리 정신을 잘 보여줬다. 각자 자기분야에서 즐겁게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배고픈 바보'들이 인생역전에 성공하는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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