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04-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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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 45명에 음대 교수진 무료 레슨 … 스승도 제자도 열성
[중앙일보 김호정.김태성 기자] 서울대 주희성(右)교수가 형편이 어려워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없었던 오혜빈양에게 쇼팽을 지도하고 있다.김태성 기자 "음정이 조금 불안하지. 페달을 잘 써봐요. 여기에선 박자가 맞지 않네."
22일 오후 서울 예원학교 강당.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오혜빈(13)양에게 서울대 주희성(38) 교수가 이런저런 주문을 하고 있다. 지도하는 곡은 쇼팽의 '스케르초 3번'. 혜빈이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여섯 살 때 제주도의 집 근처 학원에서 피아노를 시작한 혜빈이는 그동안 제대로 된 개인레슨을 거의 받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힘들어진 집안형편 때문이다. 레슨은커녕 학원비도 계속 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소외계층의 음악 영재를 유명 선생님과 연결해주는 과정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SK텔레콤이 이달 초 국내 처음 시작한 '해피뮤직스쿨' 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올해는 서울지역 거주자에 한해 뽑는다는 것.
"늘 올해까지만,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 치자고 달래왔다"는 혜빈이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올 2월 오디션에 앞서 혜빈이는 엄마와 아예 서울로 전학을 했다. 방한칸 얻을 돈과 비행기 삯을 위해 피아노를 팔았다. 방과 후 집 근처 교회들을 '메뚜기'처럼 돌아다니며 연습을 해오는 혜빈이를 두고 주 교수는 "음악회에 가거나 CD를 들은 적도 거의 없다. 오로지 자신의 느낌 그대로 연주하는 법만 안다"며 "가공되지 않은 보석을 보는 것 같다"고 가르친 소감을 말했다.
혜빈이처럼 이달부터 연말까지 주말 레슨을 받게 된 학생은 모두 45명. 열 살부터 열네 살까지의 어린 학생들로 어려운 형편에서 음악에 대한 정열을 가진 아이들이다. 이혼한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와 살면서 정신지체 동생까지 돌봐야하는 수영(12.가명)에게 피아노는 유일한 낙이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구타로 집에 들어가기가 겁났던 정수(13.가명)도 이제는 첼로를 대여받아 연습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해피뮤직스쿨에는 주 교수 외에 첼로 송영훈(33).현민자(67.연세대 교수), 바이올린 백주영(31.서울대 교수) 씨 등 명성 높은 연주자들이 참가하고 있다. 강사 13명도 힘을 보탰다. 백주영 교수는 "아이들이 배우는 모습을 보면서 '맞다, 이 느낌 때문에 음악을 하지'하고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가르쳐줘도 눈을 빛내며 정말 좋아한다는 것.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송영훈 씨는 "혜빈이 같은 아이들이 정말 많아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드라마"라며 "꼭 돈이 많아야 음악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해피뮤직스쿨은 미국 줄리아드 음대의 MAP(Music Advancement Program)를 벤치마킹했다. 줄리아드는 뉴욕시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및 빈민가정 학생들을 위해 1991년부터 클래식 음악교실을 열고 있다. 여기에서 트럼펫 연주자 윈턴 마살리스 등 유명한 연주자가 여럿 탄생했다.
SK텔레콤 사회공헌팀의 윤상준 매니저는 "단순히 한 기업의 사업이 아닌 음악교육을 바꾸는 첫 시도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레슨이 끝나자 혜빈이의 얼굴과 귀가 발그레해졌다. 혜빈의 엄마는 "항상 음악을 배고파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교수님 말씀 하나하나를 더 붙들고 늘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혜빈이도 신이 나서 얘기했다. "선생님한테 배우니까 쇼팽이 살아서 노래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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