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09-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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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앞둔 교장 선생님의 선물
섬마을 모교에 장학금 1000만원·책 1300권 光州 제석초교 김규홍 교장, 신안 암태초교에 전달
40년6개월간 교단을 지켜온 노(老)교장은 붐비는 터미널에서도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는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남색 정장에 하늘색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목포 여객터미널 앞에 서 있었다. 오는 31일 정년퇴직을 앞둔 광주광역시 제석초등학교 김규홍(62) 교장이었다. 그의 옆에는 커다란 상자 2개가 있었다. 김 교장의 모교인 전남 신안군 암태도 암태초등학교(교장 조인철)에 전달할 책들이었다.
“내 인생 13년을 학생으로, 또 교사로 암태초등학교에서 보냈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곳이에요.” 지난 14일 오전 7시 암태도로 가는 배 안에서 김 교장은 말했다. 암태도에서 태어나 암태초를 졸업한 김 교장. 그가 대학을 갓 졸업한 1967년 3월 첫 부임한 학교도 암태초였다. 그는 최근 조선일보 ‘스쿨 업그레이드, 학교를 풍요롭게’ 캠페인을 보고 “이거다!” 혼잣말을 했다. 외딴 섬 모교에 정년퇴임 기념 선물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지난달엔 장학금 1000만원과 책 1218권을 보냈다. 이번엔 아내 김향자(57·광주 송학초등학교 교장)씨와 함께 책 60여 권을 직접 더 들고 가는 길이다. 아내 김씨도 암태도에 교사로 부임했다가 김 교장을 만나 결혼했다.
“교사로 처음 부임했을 때 마을에 ‘호랑이 할아버지’로 소문난 영감님이 계셨지요. 그런데 20대의 새파란 저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선생님, 제 손녀 잘 가르쳐 주십시오’ 하시지 않겠어요? 저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김 교장)
“솔직히 섬에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해외여행을 가도 섬엔 안 갔어요. 지금도 33년 만에 처음 섬에 가는 거예요. 목포에서 교재를 배로 가져와 리어카에 싣고, 아이 업고 안고 섬마을 언덕길을 올라가면 밭 매던 아낙들이 수군거렸죠. ‘저 선생, 공부에 미친 여자여.’”(아내 김 교장)
부부가 떠난 지 33년. 섬은 그대로인데 학교는 많이 바뀌었다. “다도해 푸른 물에 마음을 싣고/ 배움의 터전 닦은 1천 건아들” 하는 암태초 교가처럼 학생 1000여 명이 가득했던 학교는 이제 전교생 83명으로 줄었다.
암태초 아이들이 새 책을 보러 교실에 모였다. 김 교장은 함께 책을 펼치며 말했다. “너희가 섬마을에 살지만 반기문 유엔총장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지. 그러려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여.” 해군장교가 꿈이라는 5학년 청혁(여·11)이는 “위인전 많이 읽고 꼭 꿈을 이룰게요”라고 했고, 4학년 창민(10)이는 “책 많이 읽으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말이 쉽지, 개인이 1000만원씩 기부하기가 쉽습니까. ‘나도 퇴직 전에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반성하고 뉘우쳤습니다.” 암태초 박동근(55) 교감의 말이다. 암태초는 전남교육청 지원을 받아 도서관을 수리하고 9월 개관한다. 김 교장이 기부한 돈은 도서 구입에 쓸 계획이다.
목포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김 교장은 “조선일보 스쿨 업그레이드 캠페인은 참 고마운 운동”이라고 했다. “보통 기부라고 하면 몇억, 몇십억씩 생각해서 겁부터 내지요. 그런데 나 같은 사람도 모교에 작은 정성을 바칠 수 있게 해주니 참말로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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