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7-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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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만원으로 사랑의 집 짓기
● 철도공사 수도권 동부지사 시설관리팀 93명
1인당 월 1만원씩 갹출… 1년새 16채 새롭게
재활용 자재 쓰고 각자 '전공'살려 인건비 아껴
19일 오전 8시30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의 한 단층 조립식 집.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새벽부터 번개가 치고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빨간 모자와 파란 조끼를 입은 15명의 중년 남자들은 톱질과 못질, 삽질에 여념이 없었다.
"고물을 주워 내다 파는 60대 노부부가 살던 집인데, 지난 달 주워서 쓰던 가스레인지가 폭발해 집이 다 타버렸어요. 어르신들이 불에 다 탄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빨리 지어드려야죠."
건축팀의 박재근(52)씨는 대들보에 올라가 욕실 지붕을 덮었다. 대들보 위에 빨간색 지붕 자재를 얹고는, 20㎝가량의 나사를 박아 1시간 만에 지붕을 고정시켰다. 정광영(55)씨 등 토목팀 직원 4명은 지붕 밑에 합판을 대고 못을 박아 천장을 만들었다. 선로보수팀 이신교(51)씨는 햄머드릴(구멍을 뚫어 시멘트 바닥을 깨는 기계)과 삽으로 구덩이 파는 일을 맡았다. 설비팀 고장우(41)씨가 그 구덩이에 흰색 플라스틱 상수도관을 깔았다.
이들은 건설회사 인부들이 아니다. 경기도 양평군 근처에서 철도와 역사(驛舍)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수도권 동부지사 시설관리팀 직원들로 구성된 '청룡봉사대' 회원들이다.
이들이 양평군 일대 독거노인들의 집을 지어주거나 수리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9월부터다. 당시 이신교씨는 "지붕에 물이 새 혼자 사는 70대 할아버지가 고생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동료들과 함께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노인의 집을 찾았다. 방에 들어서니 천장이 아래쪽으로 내려앉아 있었고, 벽지는 빗물이 새 누렇게 변색(變色)돼 있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방안에서 노인은 아파 누워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시설관리팀 직원들 중 중앙선의 양평역·용문역·덕소역 등 양평 주변을 담당하는 시설관리팀 직원 93명이 독거노인의 집을 수리해주는 '청룡봉사대'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매달 1만원씩 93만원의 성금을 모아, 이 돈으로 양평군 일대 독거노인들의 집을 수리하거나 새로 지어주고 있다.
◆93만원으로 집 짓기
이들이 모토로 내세운 건 '93만원으로 집 짓기'다. 최소 1개월에 한 채 이상씩 수리하거나 새 집을 짓기로 했다. 주변에선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이미 16채를 수리하거나 새로 지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들은 우선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주변에서 헌 집을 헐고 새 집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곳으로 달려가 헌 집의 대들보와 벽돌, 보일러 등 쓸 만한 자재들을 실어와 보관했다. 이달 초순 양평역사(驛舍)를 해체·이전할 때 나온 자재들도 모두 모아두었다. 그곳에서 나온 2~8m짜리 패널 60여장과 대들보용 철골 5개, 빨간 철 지붕 40장은 현재 공사 중인 양평군 용문면의 변영국(69)·이금화(여·62)씨 부부의 조립식 집을 짓는 데 사용하고 있다.
보일러공·전기 배선공 같은 기술자 1명당 일당은 대략 12만~15만원 선이다. 집 한 채 지으려면 인건비만 2000만원 가량 든다. 그러나 이들이 짓는 집은 인건비가 '제로(0)'다. 청룡봉사대 회원 모두 제각각 건축·토목·전기 기술자들이기 때문이다.
시설관리팀은 역 건물을 짓거나 수리하는 일도 맡고 있기 때문에 집을 짓고 보수하는 데 필요한 기술자들이 다 모여 있다. 집을 설계하고 짓는 '건축팀', 포크레인을 동원해 터 파기 공사를 할 수 있는 '기계팀', 천장 달기 등 내부 공사를 하는 '토목팀', 수도배관을 설치하는 '설비팀', 그리고 전기배선을 담당하는 '전기 보수팀'의 기술자들이 모이면 작은 조립식 단층집은 2~3주 만에 뚝딱 해치운다. 이들이 집을 짓는 데 쓰는 돈은 형광등과 전기선, 각종 나사와 못 등 주로 부속품 구입비용이다.
그런 식으로 이들은 삭아버린 보일러 배선 때문에 겨우내 냉방(冷房)에서 지냈던 오모(81) 할머니 집의 보일러를 새로 갈았고, 물이 빠지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는 부엌 바닥을 뜯어내 배수구도 다시 설치했다. 또 수도관이 동파(凍破)돼 세수도 제대로 못 하고 있던 심모(87) 할머니 집 수도배관과 전기배선도 완전히 바꾸었다.
이신교씨는 "우리가 많은 돈으로 누구를 도울 수는 없지만 우리가 가진 기술과 경험, 땀으로 도울 수는 있다"며 "한 포대당 7000~8000원 하는 시멘트와 1㎥당 5만원 정도 하는 모래를 구입하는 데 93만원이면 크게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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