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8-1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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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말기… 그래도 교단에 섰다
수술 1주일 빼곤 결근 안해… 2년만에 '정상'
방학식이 막 끝난 지난달 23일 경기도 고양시 문촌초등학교 교무실. 교장을 비롯해 전 교사가 경북 안동으로 수련회를 떠날 준비에 왁자지껄했다. 교사들이 탄 관광버스를 교문에서 배웅하는 사람은 이 학교 최종경(54) 교감. 그는 "함께 가자"고 팔을 잡는 동료 교사들의 등을 떠밀고 혼자 남았다. "한 사람은 학교를 지켜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라 했다.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최 교감의 생각은 2년8개월 전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 교감은 수술 직후 일주일 입원한 것을 빼곤 단 한 번도 연가(年暇)를 내거나 결근하지 않았다. '교사는 죽어도 교단에서 죽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링거병을 달고 출근
1978년 강원도 정선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최 교감은 '학교 붙박이'로 불린다. 교직생활 30년째인 지금까지 지각·결근·연가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평교사 때부터 누구보다 이른 오전 7시에 출근했다. 5층부터 1층까지 전 교실을 돌며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하고, 쓰레기를 주우며 학생들을 맞았다.
이런 최 교감이 암 진단을 받은 것은 2005년 11월. 학교 의자에 앉아 있으면 엉덩이 쪽이 자꾸 불편했다. 평소 '만능 스포츠인'으로 불리고 감기 한번 안 걸릴 정도로 건강했기 때문에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와 동네 병원을 찾았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 했다. 결국 국립 암센터에서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그 달 26일 최 교감은 항문 바로 윗부분인 직장 5㎝ 정도를 남기곤 대장을 모두 잘라내야 했다.
최 교감은 퇴원하자마자 평소와 다름없이 오전 7시 출근했다. 같은 학교 이순이(45) 교사는 "한 두 달 쉬실 줄 알았는데 일주일 만에 교감의 하얀색 승용차가 운동장에 세워져 있어 모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최 교감은 학교에서 암과 싸웠다. 수술 후 6주간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땐 점심 시간에 병원에 갔다. 하루에도 40~50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냄새가 나 아이들과 동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예 학교에 속옷과 겉옷을 여러 벌 가져다 놓고 자주 갈아입었다. 학교에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최 교감을 위해 '비데'를 설치해줬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자 4개월간 약물 치료가 시작됐다. 최 교감은 한 달에 2번씩, 아기 젖병만한 링거 병을 2박3일간 옆구리에 차고 다녀야 했다. 처음 보는 물건이 신기한 아이들은 링거 병을 '툭툭' 치거나 "이게 뭐예요" 하고 묻기도 했다. 최 교감은 그럴 때마다 얼버무리지 않고 "선생님을 안 아프게 하는 약통"이라 설명했다. 퇴근 후엔 학교 근처 황룡산에 올라 꾸준히 운동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과 있는 것
최 교감은 "아프니까 짜증만 내고 일 안 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수술 후 더 열심히 일했다. 일년에 2~3번씩, 한번에 60시간을 채워야 하는 연수 과정을 듣고,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땄다. 지난해부터는 방학 때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음악·체육을 가르치는 '느티나무 교실'을 열었다. 방학인 지금도 매일 2시간씩 아이들과 리코더·하모니카를 불고, 탁구를 하며 땀을 흘린다.
수술 2년 후 최 교감은 주치의로부터 "일반인과 다름 없는 건강 상태"라는 판정을 받았다. 인공항문까지 고려했던 '말기 암 환자'가 '일반인'이 된 것이다. 최 교감은 "이 모든 것이 아이들과 이해해준 동료 교사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암을 극복하려면 가장 행복한 순간만 생각하라고 하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아이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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