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11-1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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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성… 조경란, 독자를 유혹하다
6년만에 내놓은 장편 ‘혀’
음식점 돌며 요리사 밀착 인터뷰 요리 이야기와 삼각관계 다뤄
“음식·性은 먹는다는 공통점 새로운 조경란 보여주겠다”
▲ 소설가 조경란“독자들이 군침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문체가 멋지다는 말보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얘기도 듣고 싶고요.”
소설가 조경란(38)의 신작 장편 ‘혀’(문학동네)는 음식을 소재로 쓴 작품이다. 거위 간으로 요리한 푸아그라, 20㎏이 넘는 대형 다금바리로 만든 회, 주꾸미 파스타 등 군침 도는 음식들이 등장해 공복감을 자극한다. 지난 1년간 요리사를 인터뷰하고, 요리학원과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취재해서 소설 위에 펼친 다양한 요리법은 심야에 먹는 밤참처럼 독자를 유혹한다.
정밀하게 대상의 내면을 묘사하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세밀한 문체는 여전하다. 그러나 미각과 촉각 같은 육체적 감각을 자극하는 언어는 이전 소설들에서 볼 수 없던 조경란 문학의 새로운 영역이다. 작가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적 즐거움을 문자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봄철에 먹는 주꾸미에 대한 묘사가 입안에 침을 돌게 한다.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 대신 바질 페스토에 살짝 찍어 한입 가득 넣었다. 물컹하지만 탄력이 느껴지고 바다 냄새가 입 안 가득 번졌다. 거기에 톡 쏘는 상큼한 바질의 맛이라니. 진짜 봄의 맛이다.’(82쪽)
시간과 공간이 정지된 무대에서 내면으로 침잠하던 그녀의 소설이 속도감 있는 이야기로 변신한 것도 주목된다. 소설은 요리 이야기인 동시에 요리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다룬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리사 지원은 사랑하는 남자를 전직 모델 출신인 세연에게 빼앗긴다. 한 명의 남자를 두고, 요리솜씨로 무장한 지원과 늘씬한 몸매를 앞세운 세연이 벌이는 연애 대결이라는 설정이 통속의 혐의마저 갖게 한다. 메뉴에 없는 요리를 주문하는 고객을 맞아 음식을 만들어 내는 설정은 드라마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속의 성(性)은 음식의 맛이나 색과 중첩돼 펼쳐진다. ‘포도주에 절인 복숭아같이 둥글고 붉은 빛이 도는 그녀 엉덩이’이고 ‘자두처럼 쭈글쭈글한 음낭’이다. “음식과 성은 무언가를 ‘먹는다’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작가는 “내 소설은 ‘무엇을 먹을까’의 이야기인 동시에 ‘누구와 먹을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쓰며 “장편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11년 전 등단할 때 장편으로 했어요. 그런데 6년 전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이후 장편을 전혀 쓰지 못했어요.” 조경란은 “그사이, 작가가 책상을 떠나 있으면 작가가 아니라고 한 카프카의 말을 자주 떠올렸다”고 말했다.
“장편을 끌고 나가려면 독자가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해요. 그러려면 그만큼의 ‘이야기’가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조경란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문학평론가 김화영은 혀를 통해 맛을 느끼고 사랑도 나누는 조경란의 신작에 대해 “혓바닥 위에 세운 감각의 제국”이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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