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1-0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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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마지막 희망이 지구를 지키는 일이었으면!
이 책을 읽기 전에 지인을 통해 대략적인 줄거리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책에 대한 나의 흥미는 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베르나르의 천재성에 가까운 상상력은 나를 여전히 놀라게 했다. 어떻게 노아의 방주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저 먼 우주를 1천2백 년 넘게 항해하는 아주 커다란 범선을 말이다. 나는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다>라고 결론짓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담은 파피용호가 새로운 행성에서 산뜻한 새 출발을 할 거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보란듯이 빗나갔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듯한 그의 이야기는 어쩌면 당연한 결말을 맞이한 것인지도 모른다.
책 표지에 나오는 나비가 인상적이다. 영화 <빠삐용>을 보았던 나는 제일 먼저 흰색과 검정 줄무늬의 죄수복이 연상되었다. 파피용과 나비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태양계를 벗어나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을 거느린 가장 가까운 항성으로의 여행,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20조 킬로미터를 여행하려고 14만 4천 명의 남녀 우주인을 태우고 떠날 태왕광 범선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희망(Dernier Espoir)’에 나비를 뜻하는 <파피용 papillon>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는데 이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로고가 나비였다. 일곱 개의 별이 반짝이는 깜깜한 우주 한가운데 은빛이 감도는 파란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마지막 희망은 탈출뿐이었을까. 수천 년간 살아왔던 지구를 떠나는 선택된 소수 사람들. 그 무리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지구에 남은 사람들. 나 또한 그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작가 맘대로 주인공들에게 빗대어 인용한 부분이 신경을 거슬리는 것은 차치한다. 노아의 방주를 짓게 하여 사십 일간 큰 비로 타락한 세상을 깨끗하게 심판하셨던 하나님도 지구를 버리지는 않으셨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날의 징후와 같은 일들이 지구 상에서 매일 벌어지는 상황에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것이 과연 최선책이었을까.
그들 스스로 천국이라 불렀던 범선 안에서의 삶은 에덴동산처럼 한없이 행복하진 않았다. 정치인, 군인, 목사는 제외하고 엄격하게 선별된 사람들로 구성되었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는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가서 치정살인으로 시작하여 약탈, 권력 다툼, 전쟁, 종교 간의 갈등 등 지구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작가의 이전 작품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의 한 대목이 불현듯이 생각난다. 1989년 낭시라는 도시에서 쥐들을 상대로 행해진 실험 결과를 통해서 보면 쥐들의 위계 구조는 피착취자 두 마리, 착취자 두 마리, 독립적인 쥐 한 마리, 천덕꾸러기 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예정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법도 없는 평등한 사회구조에서 시작되었지만 쥐들처럼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가 나타나게 된다. 결국 천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반란과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천국 같던 범선 내의 모습도 서서히 황폐화되어 간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사람은 원시화된 여자 한 명과 남자 다섯 명뿐이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 고 말한 스피노자. 60세대 후에나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게 될, 그 먼 후세들을 위해 주인공 이브가 30년에 걸쳐 작성한 『예전 세계의 백과사전』, 『항해일지』, 『새로운 행성: 사용법』을 보면서 그나마 팍팍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치닫게 된 지구. 삽입된 일러스트의 분위기만큼이나 지구의 미래는 처절하고 암울해 보인다. SF영화가 허구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 몇십 년 후, 아니 몇 년 후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 상상하면 사실 여부를 떠나 끔찍한 생각부터 든다.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지구의 미래는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이는 국내외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웃을 일이 거의 없는데 최근 대통령 선거와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를 접하면서 더욱 그러하다. 비록 사과나무를 심지는 못할지언정 후손들에게 병든 지구를 물려주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나는 먼 미래의 후손들이 밀폐된 공간이 아닌, 태양계 지구별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비로 탈바꿈하기를 원했던 이브의 아버지처럼 나 또한 나의 자녀가 꿈을 꾸고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방종이 아닌 책임감 있는 자유를 누리면서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지구는 독수리 오형제가 지킨다지만 우리 인류에게 있어 마지막 희망이 지구를 지키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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