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3-1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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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정부·전처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던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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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정부·전처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던 유대인
행복과 슬픔도 그 사이에서 왔다가 갔다
'원수들, 사랑 이야기'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ㆍ김진준 옮김
2차대전이 막 끝난 1940년대 후반의 뉴욕. 홀로코스트를 피해 폴란드에서 건너온 ‘헤르만’은 브롱크스와 브루클린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꾸린다.
브롱크스엔 나치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보살폈던 어리숙한 하녀 ‘야드비가’가 아내가 돼있고, 브루클린엔 남편과 별거 중인 관능적인 정부(情婦) ‘마샤’가 살고 있다.
여기에 전쟁통에 죽은 줄 알았던 전처 ‘타마라’가 나타나면서 속물적인 랍비를 위한 대필 작업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헤르만은 졸지에 세 아내를 거느리게 된다.
상황은 희극적이지만 인물들, 특히 유대인 학살의 만행을 감당해야 했던 헤르만, 마샤, 타마라의 내면은 어둡기 그지없다. 같은 종(種)의 목숨을 무자비하게 끊는 인간과, 이런 광기를 수수방관하는 신에게 이중의 환멸을 느끼는 이들은 ‘산 주검’과 다름없는 감각으로 살아간다.
헤르만과 마샤가 동물원의 사자를 보며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스스로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자의 절망을 보여주고 있”(64쪽)다고 느낄 때, 말끔한 차림으로 헤르만 앞에 나타난 타마라가 “이교도들은 옛날부터 이렇게 시체를 곱게 단장했고 요즘은 유대인들도 이교도와 다름없잖아”(89쪽)라며 자신의 몸단장을 두고 이죽댈 때, 압도적 폭력에 생의 감각이 짓눌려버린 이들의 암울한 내면이 드러난다.
서로 다른 힘과 방향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세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우유부단하게 비척대던 헤르만은 진정 사랑한다고 여기는 마샤와 생의 탈주를 꾀한다.
“우린 이제 유대인도 아니고 난 더 이상 여기 머물 수 없어.”(296쪽) 하지만 뿌리째 들렸다 여겼던 두 사람의 삶은 어느새 사회적 관계와 기대로 단단히 포위됐고, 포위망을 뚫고 나갈 굳은 의지는 둘에게서 말소된 지 오래였다. 20세기 폭력의 역사는 개인의 삶에 희극의 씨를 뿌리곤 비극의 열매를 거둔다.
폴란드 출신 미국 소설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1902~1991)의 72년 작품으로, 이야기의 활력을 잃지 않으면서 그 속에 비극적 존재들의 내면과 2차대전 직후 미국 유대계 사회의 풍경을 세밀히 점묘한 장인적 솜씨가 돋보인다.
평생 이디시어(중부ㆍ동부유럽 출신 유대인의 언어)로 작품을 썼던 싱어에게 78년 노벨상 선정 위원회는 “폴란드계 유대인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인류의 보편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문학”이란 찬사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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