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4-14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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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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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는 세계인들의 로망이다. 매년 세계 곳곳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은 하버드라는 로망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서진규(60) 박사와 딸 조성아(33)씨는 '하버드 최초의 모녀 재학생'으로 유명하다. 서 박사는 미군 장교로 복무하다 불혹을 넘겨 하버드에 도전, '공부'와 씨름하며 석사와 박사를 땄다. 딸 역시 엄마가 걸어간 공부의 길을 따라 걸었다.
■역경을 발전 동기로 삼아라
서 박사는 어린 시절 몹시도 가난하게 살았다.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지만 오빠에게 밀려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좀더 넓은 세상에 살겠노라며 무작정 미국행(行)을 택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생활 또한 녹록지 않았다. 마흔 셋의 나이에 육군 대위가 된 그는 실력을 인정 받아 동북아지역전문가로 선발됐고 주경야독하며 복무 중 대학도 마쳤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하버드 대학원에 지원, 기적처럼 합격 통지서를 따냈다. 2년 뒤에는 하버드대 국제외교사와 동아시아 언어학 박사과정에 합격하고 15년 후인 지난 2006년에는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처음에는 제가 하버드 박사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죠. 그렇지만 계속해서 오기를 갖고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이런 행운이 찾아왔어요. 아무리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도 정신력으로 버티면 이겨낼 수 있어요."
▲ 뒤늦게 하버드에 도전해 당당히 박사 학위를 딴 서진규씨. 이구희 객원기자■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제일 좋은 교육
서 박사는 다정다감하게 챙겨주는 엄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군사훈련 받으랴, 공부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단다. 자녀에게 힘들게 사는 모습을 애써 감추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애썼다. 그녀는 "때론 엄마가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이들에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일하는 모습만큼이나 공부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집에 있을 때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책상에서 엎드려 잔 일도 많다. 딸 성아씨를 데리고 하버드대 캠퍼스에도 자주 갔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같이 읽거나 교수나 연구원을 함께 만나곤 했다. 학회에도 자주 동행했는데 아이가 옆에 있을 때는 평소보다 질문을 많이 하고 수업도 더 열심히 들었다.
그렇다고 서 박사가 공부를 강요한 극성엄마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오히려 그녀는 딸에게 공부하라는 말 한마디 한 적이 없다. 성적이 떨어져도 혼내지 않았다. 딸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반에서 꼴찌를 도맡아 했으나 엄마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았다. 서 박사는 "꼴찌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성적이 조금 올랐을 때 기쁨이 더 큰 법"이라며 "성아도 중학교 때 성적이 조금 오른 후 자신감이 생겨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대신 서 박사는 곁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데 애썼다. 그가 쓴 방법은 일명 '맹모삼천지교'법. 군 배치 이동이 잦아 이사를 갈 때마다 반드시 사전 답사해 일대에서 가장 좋은 공립학교로 전학시켰다. 덕분에 성아씨는 중학교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좋은 공립학교인 퍼시픽 그로브를, 고등학교는 하버드 근처에 있는 벨몬트를 다녔다. 특히 벨몬트고(高)는 1년에 최소한 10명 정도를 하버드나 예일 같은 아이비리그에 합격시키는 명문고다. 성아씨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실력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 끝에 딸은 고교를 1등으로 졸업, 미국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서 박사는 "자녀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부모가 작은 것 하나까지 참견하기보다는 멀리서 관망하고 큰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 좋다"며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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