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9-08 20:54
|
아름다운 인생 전환 ① 안철수 KAIST 교수
|
|
|
글쓴이 :
 조회 : 1,080
|
아름다운 인생 전환 ① 안철수 KAIST 교수
내가 선택한 길이 최선일까. 많은 사람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호기롭게 새 삶을 개척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보 부족과 실패의 두려움 탓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성공 스토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중앙SUNDAY는 또 다른 나를 찾아 ‘제2의 인생’에 도전하려는 이들을 위해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꾼 인물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첫째로 의사에서 벤처기업가로, 다시 교수로 변신한 안철수(46·사진) KAIST 교수를 인터뷰해 선택의 기로마다 그를 이끌었던 삶의 원칙이 무엇이었는지 입체적으로 분석해 봤다.
의사 안철수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졸업 때 선택해야 했다. 의사를 할 것인가, 아니면 공부를 더 할 것인가. 고민 끝에 연구직을 택했다. 환자 개개인을 돕는 것도 의미 있지만 생리학을 공부해 병의 원인을 밝히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88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브레인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창궐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그의 컴퓨터도 감염됐다. 환자 대신 컴퓨터 치료에 나선 그는 국내 처음으로 백신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를 무료 배포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그는 새로운 컴퓨터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해결사로 나섰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까지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출근해 밤늦게까지 생리학 연구에 매진하는 이중생활을 무려 7년간 계속했다.
군의관을 제대한 94년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개인적으로 컴퓨터 일을 하면서 다른 대학원생의 인생을 책임지는 의대 지도교수를 한다는 게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의학계엔 이미 많은 인재가 있는 반면 컴퓨터 바이러스 쪽은 그 혼자뿐이었다. 결국 사회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쪽은 컴퓨터라고 판단했다. 당시 그의 선택 원칙은 이랬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과거는 잊어라.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그래야 행복하고, 어렵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
요즘의 의대 입시 열풍을 의사의 삶을 포기한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단지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혹은 돈과 지위 때문에 의사가 되려 한다면 의사나 환자나 모두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CEO 안철수
95년 서울 서초동 뒷골목에서 시작한 안철수연구소는 99년 국내 보안업계 최초로 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혈연·지연·학연으로 사람을 뽑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고위 관료의 인사청탁도 거절했다. 그래야 실무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정작 자기 기사나 자신이 출연한 방송을 잘 안 본단다. 보도를 보면 실제보다 과장되게 나오는 경향이 있어서다. 항상 자신이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조그만 성공에 만족하지 않으며, 방심하지 말자는 삶의 원칙을 지키고 싶었다.
한때 ‘한국에선 빌 게이츠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그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생각하는 국민 의식과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꼬집었던 것이다. ‘눈먼 돈’으로 불리는 이런저런 공공자금과 대표이사 연대보증 관행 때문에 망해야 할 기업이 좀비처럼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존경하는 인물은 인텔의 전 최고경영자(CEO) 앤디 그로브. 나이 들고 높은 지위에 올랐음에도 현장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는 그를 닮고 싶었다. CEO는 큰 그림만 그려도 된다는 말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로브처럼 ‘세부 사항에 대한 열정(passion for details)’을 갖춰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약점도 잘 알고 있었다. 뜻 맞는 사람과 깊게 사귀는 성격이어서 대인관계가 좁았다. 좀 달랐다면 회사가 더 발전했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의대생·의사로서의 삶은 CEO 안철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그저 헛되이 낭비된 것일까. “(당시 배웠던) 내용은 쓸모없는 것이 됐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의대생 시절의 삶의 태도는 지금도 내 핏속에 흐르고 있다.”(『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에서)
교수 안철수
공부 잘하는 모범생 스타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진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중간쯤 했고, 고교 2학년 때까진 반에서 1등 한 번 못했다. ‘고통 없이 배움도 없다(No pain, No gain)’고 생각한다. 두 번의 유학을 포함해 27년간을 학생으로 살았다. 첫 유학 시절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밤을 새웠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 바둑을 배울 때 바둑알을 잡기도 전에 50권 정도의 관련 서적을 사 공부했다. 의대생 시절 남들이 ‘족보’라고 불리는 문제집을 공부할 때 그는 교과서를 봤다. 이런 방식은 더디고 미련해 보인다. 하지만 기초가 튼튼해야 나중에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KAIST 첫 강의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너무 똑똑해 불행해진 사람이 많다. 이리저리 직업을 바꿔 보지만 성과는 신통찮다. 내가 직업을 가벼이 바꾼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 달라. 나는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간 다음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는 이제까지 9권의 책을 썼다. 가장 아끼는 책은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책 쓸 때는 힘들지만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희열을 잊지 못한다. 이제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책은 그가 ‘머리로 낳은 자식(brain child)’이다. 그는 무엇인가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한다. 살다 간 흔적을 남겨야 의미 있는 삶이라고 믿는다. 내세를 믿지는 않지만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키며 살다가 ‘별 너머의 먼지(star dust)’로 돌아가는 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바보’ 안철수
그는 지나칠 정도로 원칙을 고수한다. 어찌 보면 ‘바보’ 같다. 97년 미국 백신회사인 맥아피가 1000만 달러를 내며 회사 인수를 제의했지만 거절했다. 2000년 닷컴 열풍이 불었을 때 주위에서 투자를 받거나 기업공개(IPO)를 하라고 권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당시 세간의 벤처 평가에 거품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거액을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회사의 핵심 역량으로 이익을 내는 게 아니라면 결국 회사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철수연구소가 IPO를 한 것은 벤처 거품이 꺼졌던 2001년 ‘9·11 테러’ 다음 날이었다. 그는 지금도 이런 판단이 옳았다고 믿는다.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나 정보통신부 장관 제의도 마다했다.
99년 벤처 거품이 한창일 때 “벤처 95%는 망한다”는 말을 했다가 욕을 엄청 먹었다. 99년 말 ‘2000년이 되면 컴퓨터에 심각한 오류가 생긴다’는 소위 ‘Y2K’ 문제로 온 세상이 시끄러울 때 ‘Y2K 피해 없을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지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결국 그의 판단은 옳았다.
그는 술·담배를 안 하고 골프도 안 친다. 귀국 후 한동안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끊었다. 5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전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서남표 KAIST 총장이 일면식도 없는 그를 교수로 부른 것처럼 그를 찾는 이는 많다. 기업·학교의 강의 요청도 빈번하다. 요즘 세상, 많이 영악해졌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바보’를 찾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