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9-26 09:30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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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인간에 관한 가장 끔찍한 보고서이자 가장 아름다운 보고서
대재앙이 일어난 지구, 그곳에 한 남자와 한 소년이 있다. 지구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문명은 파괴되었고 지구의 거의 모든 생명은 멸종했다. 세상은 잿빛이다. 불에 탄 세상은 온통 재로 뒤덮였고, 하늘 가득 떠도는 재에 가려 태양도 보이지 않고 한낮에도 흐리고 뿌연 빛만이 부유한다.
무채색의 황폐하고 고요한 땅, 신은 사라지고 신을 열렬히 찬미하던 이들도 사라진 땅, 그곳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길을 걷는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은 먹을 것을 찾아 텅 빈 집들과 상점들과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연명하기 위해 인육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트럭을 타고 다니며 인간을 사냥하는 무리도 있다.
남자와 소년은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한 여정에 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왜 남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안간힘으로 남쪽을 향해 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아들에게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다.”
남쪽을 향해가는 그들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얼마 안 되는 물품들을 담은 카트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살용으로 남겨둔 총알 두 알이 든 권총 한 자루가 전부다. 남자와 소년은 밤마다 추위에 떨었고, 거의 매일 굶주렸다. 식량은 늘 부족했고 숲에 만드는 잠자리는 춥고 불안했다. 수일을 굶다가 운 좋게 먹을거리를 만나면 그들은 주린 배와 카트를 채운다.
남자와 소년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잇따른다. 인간사냥꾼에게 잡힐 뻔하기도 한다. 결국 그 사냥꾼을 향해 남자는 아껴둔 총알 하나를 사용한다. 남자의 총에 맞아 죽은 그 사냥꾼의 시신은 나중에 껍질과 뼈만 그 자리에 남게 된다. 그의 무리들이 삶아먹은 것이다.
굶주림에 지친 남자와 소년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들어간 집에서는 지하실에 발가벗긴 채 갇힌 사람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사람들은 사냥꾼들의 ‘저장된 식량’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숲에 숨어 길을 살피던 남자와 소년의 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뜬다. 길을 걷는 남자 셋과 여자 하나였는데, 여자는 만삭의 몸으로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남자와 소년은 그들이 지나간 한참 후에야 숲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걷는다. 한참 길을 걷던 소년은 숲에서 실낱같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한다. 남자는 한번 살펴보자며 총을 꺼내들고 숲에 들어간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모닥불에는 고깃덩이 하나가 꼬챙이에 꿰어져 구워지고 있었는데, 머리를 떼어낸 갓난 아기였다. 아기를 굽던 무리들이 총을 들고 오는 남자를 발견하고 황급히 몸을 숨긴 것이었다.
“아기를 어디서 찾았을까요?”
소년의 질문에 남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남자는 매일 피가 섞여 나오는 기침을 하며 잠을 깬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아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싶다. 예기치 않은 공격, 위험한 상황에의 노출, 그리고 무엇보다 굶주림으로부터. 특히 다른 방랑자를 만날 때마다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아들이 위험한 충동 때문에 아들의 신변이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미 사라진 문명에 대해 아들은 아는 바가 없다. 문명이 존재하던 “예전 사회”에 대한 어떤 기억도 지식도 체험도 아들에게는 없다. 살아남은 모든 사람을 경계하는 아버지와 그 사람들에 대해 다가가려 하고 도와주려 하고 껴안고자 하는 아들…
남자는 이제 죽음이 다가왔다고, 남들 눈에 띄지 않고 숨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소년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걷잡을 수 없이 흐느끼곤 했다. 하지만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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