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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2-16 12:03
남한산성
 글쓴이 : bonappr
조회 : 1,494  

김훈

“치욕을 기억하라!”

3년 만에 선보이는 전작 장편『남한산성』에서 김훈은 조국의 가장 치욕스런 역사 속으로, 가장 논쟁적인 담론 속으로 곧장 뛰어든다. 이 점에서‘남한산성’은 작가 이력에 새로운 마디를 이룬다.
앞선 소설『칼의 노래』와『현의 노래』역시 역사를 다루지만, 그것은 역사의 무게보다 존재의 무게에 방점을 둔다. 『남한산성』은 조선 왕이‘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하고 있다. 47일간 갇힌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무섭도록 끈질긴 질감을 보여준다.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이고, 씻을 수 없는 역사였다.
김훈 특유의 냉혹한 행간 뒤에 숨겨진 뜨거운 말의 화살들은 독자를 논쟁의 한가운데로 내몬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작가는 주화를 편들지도, 주전을 편들지도 않는다. 다만 지도층의 치열한 논쟁과 민초들의 핍진한 삶을, 연민을 배제한 시각으로 돌아볼 뿐이다.

왜‘남한산성’인가?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 김훈의『남한산성』중에서


김훈은 370년 전의 치욕을 왜 21세기인 지금 다시 꺼낸 것일까? 작가는 무엇보다 ‘치욕을 기억하라
(memento infamia)’고 말한다.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더럽혀지는 인간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역사가 삶과 죽음의 기록이라고 할 때, 치욕의 역사는 살아 낸 삶의 이력이다. 이 치욕이 단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미래형이 될 수 있음을 작가 김훈은 에둘러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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