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 14세는 없다
이영림 지음, 푸른역사
427쪽, 2만원
역작이다. 하나의 토픽으로 채워진 전작(全作) 단행본 자체가 쉽지 않은 영역이 서양사인데, 두툼한 『루이 14세는 없다』는 등장 자체가 뉴스다. 국제학계 흐름은 물론 우리 시각을 반영한 이 고급고양서가 펼쳐 보이는 17세기 프랑스 궁정의 세밀화는 조선왕조 디테일에 못지않다. 일테면 ‘태양왕’ 루이 14세의 실제 풍모 묘사-. 사자머리를 휘날렸던 그는 실제는 대머리였다.
스무 살에 죽다 살았던 성홍열 때문에 머리가 몽땅 빠진 탓인데, 외모에 민감했던 그는 실내에서도 맞춤 가발을 착용했다. 작은 키(160cm)를 감추려고 키높이 구두도 신었다. 단것을 좋아해 망가진 치아를 30대에 모두 뽑기도 했다. 치루·통풍·만성두통에 시달렸던 ‘움직이는 종합병동’인데, 이런 만병을 불렀던 식탐도 무지막지했다.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눈앞의 음식을 몽땅 쓸어 넣는 게 ‘정치적 능력’으로 통했고, 신하에게도 그걸 강요했다. 사후 해부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위·창자의 부피와 길이가 보통 사람의 두 배”(343쪽)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위대(胃大)한 왕은 정치적으로도 과연 위대했는가? 역사가들은 그의 치세 72년을 ‘위대한 세기’라고 말해왔지만,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상징되는 고전주의의 뒷모습은 무엇일까?
그를 둘러싼 신화의 해체가 이 책이다. 왕·신하가 남긴 회고록, 그의 병든 몸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건강일지』, 법령집 등 1차 자료를 추적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루이 14세를 성공적으로 그려 보인다. 일테면 17세기 궁중의 권력 작동은 절대군주정에서 거리가 멀었다. 근대적 관료기구의 원조쯤으로 알았더니 막상 확인해보니 왕과 신하 사이의 엉거주춤한 타협이었다.
뿐인가? 관직 매매의 오랜 관행, 주먹구구식 재정과 징세의 실제 모습은 당시 정부가 “공적 기구라기보다는 거대 기업”이었다. 강력한 근대 민족주의의 상징이 필요했던 19세기 프랑스 학계가 만들어낸 ‘작품’이 루이 14세라는 결론인데, 의문은 남는다. 저네들이 신화 해체에 뛰어들었다고 우리도 덜렁 가세해야 할까? 우리의 근대 만들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갈 길 역시 먼데….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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