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게송: 唯滯兩邊이라 寧知一種가 유체양변 영지일종
오직 양변에 머물러 있거니 어찌 한가지임을 알건가
해설:
唯滯兩邊 寧知一種
유체양변 영지일종
오직 양변에 머물러 있거늘,
어찌 하나(중도)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움직임을 그치고 돌아가려 하는데 오직 양변에 머물러 있거늘,
여기서 양변이라는 것은 이문, 시비, 구정(더럽고 깨끗한 것),
생멸, 유무, 선악, 미추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나 미워하는 마음 등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은 항상 양변에 치우친다.
할까 말까? 이건가 저건가?
이 양변은 항상 시비를 가리게 하는 것이므로,
이 동네에서 보면 동산이고 저 동네에서 보면 서산이다.
이건 서산인가 동산인가?
이것을 떠나 그냥 지켜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산이 하나 있어 동쪽에서 보면 서산이요 서쪽에서 보면 동산이다.
시비를 가려야하나? 떠나서 보면 동산도 서산도 아니다.
이건 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산은 그냥 산일 뿐! 이것이 ‘공’ 이다.
양변에 머물러 있으면 어찌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이 하나는 중도이다
13게송: 一種不通하면 兩處失功이니 일종불통 양처실공
한가지에 통하지 못하면 양쪽 다 공덕을 잃으리니
해설:
一種不通 兩處失功
일종불통 양처실공
하나라는 것에 통하지 못하면
두 곳에서 공덕을 잃는다.
하나라는 것을 통하지 못한다는 것은, 즉 중도를 깨닫지 못하면 양쪽을 다 잃는다.
다시 양변에 치우친다.
하나인 줄 알면 동산도 서산도 맞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산이 본래 동산도 서산도 아님을 안다면 동산이기도 서산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에서도,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고,
또 상대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다가 나쁜 사람이 되었다가 한다.
그러나 사실은 상대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로부터 일어나는 줄 알아버리면 양극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
14게송: 遣有沒有요 從空背空이라 견유몰유 종공배공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에 따르면 공함을 등지니라.
해설:
遺有沒有 從空背空
견유몰유 종공배공
유를 버리면 곧 유에 빠지게 되고,
공함을 따르면 도리어 공함을 등지게 된다.
유(유무의 단견)를 버리면 곧 유에 빠지게 된다.
유는 버려야 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유를 버리면 바로 공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도리어 유에 빠진다.
그러면 공을 따르면? 도리어 공을 등져 버린다.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을 따르면 공함을 등지게 된다.
범부는, 동산이라 하면 서산이라 하는 견해와 다투고, 서산이라 하면 동산이라는 견해와 다툰다.
그러다 양극단을 떠나면 동산도 서산도 아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때, 동산과 서산이 망견이므로 두 견해를 버리면 끝나는데,
이 두 견해를 모두 버리면 비동 비서산 이라는 새로운 견해를 가지려한다.
즉 이게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깨달으면 비동비서가 된다.’
하게 되어 다시 깨달았다 못 깨달았다. 라는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이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공이 아니라, 공상에 집착한 것에 불과 할뿐이다.
공상에 빠지는 것은 흔히 범하는 우이다.
상을 버리는 것이 공인데,
공이라는 상을 취한 결과이다.
이것은 이미 공이 아니다.
그러면 상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은 다만 동산이라는 상과 서산이라는 상을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진리를 새로 세우지 않아야한다.
친구지간의 토론시, 친구가 지식이 많다.
그러면 내가 밀린다.
그러다 법문을 듣고 자기 생각이 부처님 말씀과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너무나 기뻐서 가는 길에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길, 진리란 이런거라고 하셔..
이순간 이 사람은 자기의 견해가 옳음을 주장하기위해 부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한다.
만약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응당 이렇게 말해야한다.
내가 잘 몰랐는데, 의견이란 서로 다른 거로구나.
전에 당신이 동산이라 하기에 틀렸다고 내가 우겼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동산이라 해도 될 것 같아요.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이것이 공을 이해 한 것이다.
평소에 어머니가 미신을 믿고 그러는데 오늘 법문을 듣고 보니,
어머니 그건 정법이 아니래요한다면 그게 바로 정법이라는 상을 취한 것이다.
법문을 제대로 들었다면, 미신을 믿는 어머니에게, 그런 환경에서, 그 분의 삶에서 볼 때,
그 분으로서는 그것도 하나의 믿음이요, 종교요, 신앙이다.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래서 옳은 것은 아니지만 함께 가자고하면 가주기도 한다.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제대로 불법을 배운 것이다. (동산이 동산이 아니라 그 이름이 동산이다)
불법을 잘못배우면 전법의 이름으로 타인을 구속하고 해친다. (이것은 세속적 정의이다)
진리의 세계에서는 선악이라는 것이 각자의 자기 입장에서 바라 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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