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에서 느낌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책상앞에 놓인 불꺼진 컴퓨터를 보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컴퓨터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와 다를게 없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는 그 앞에 앉아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과 마음을 운용하는 사용자는 누구일까요?
몸은 사실 마음을 싣고 작동하게 만드는 기계에 불과합니다
마음은 생각의 회로를 통하여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도구라고 보여집니다
컴퓨터에 전원이 나가듯 한번 꺼지면 무용지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몸과 마음을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살까요
누가 있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것일까요
몸과 마음을 만들고 보살피고 사용하는 주체를 우리는 신이라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신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신이라 하든, 불성 또는 참나, 절대라 부르던 모두 관념에 불과합니다
알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사유체계는 아무리 논리적이라 해도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최초의 출발점이 알 수 없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부터 접근해 보아야겠지요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것이 무었일까요?
그것은 생각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엇을 하고싶다’는 생각은 생각이 아니고 느낌입니다
어떤 느낌이 일면, 그 느낌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생각의 과정이 동원되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의 오너가 목표를 제시해 주면, 참모들이 기안을 하고 방법을 찾고
실행을 위한 설계를 하는 과정이 생각의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하는 것은 느낌이고,
생각은 느낌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시종이라고 보면 됩니다
느낌은 단순히 명령을 내리는 존재만은 아닙니다
명령이 수행되었을 때 그 결과를 취하는 자이고, 그것을 감상하는 자이고
그러한 일련의 사건 전후를 알고 있는 앎일 것이며
컴퓨터를 만들고 교체하고 운용하듯, 몸과 맘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고 경험하는 창조적 주체적 존재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과 느낌은 차원이 다릅니다
생각은 수동적이며, 대상이 있고,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로 그림을 그리는 반면
느낌은 능동적이며, 대상이 없고, 시공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진정 편안함을 느낄 때
그 느낌은 주체적이며, 상대가 필요 없고, 공간적 이미지가 아니며
과거나 미래에 느껴질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러한 초월적 원동자인 느낌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습니다
생각에도 느낌과 혼동하기 쉬운 영역이 있습니다
생각으로부터 재생산되고 파생된 이차적 느낌이 있습니다
원래의 느낌은 이러한 생각차원의 느낌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생각의 집은 머리이고, 느낌의 거처는 가슴입니다
본래적 느낌은 가슴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의식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위치이동만 시켜도 생각은 멈추고 느낌이 작동합니다
느낌과 생각을 뭉뚱그려 마음으로 생각한 모호한 사유의 세계를 떠나야 할 때입니다
현상계는 물질이든 정신이든 모두 소립자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파동의 진동수가 가장 낮은 것이 눈에 보이는 물질, 그 중에서도 고체입니다
소리, 빛, 기, 생각 등으로 올라갈수록 진동수가 높아집니다
진동수가 무한대라서 파장이 제로인 상태를 空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한대나 제로는 개념상으로만 있을뿐 실상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空은 실상계 이전, 모든 가능태가 잠재성으로만 들어있는, 우주로 말하면 빅뱅 이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느낌은 생각 이전입니다.
느낌중에서도 바탕느낌은 파동은 있되 무언가에 부딪히기 이전의 파형이 일정한, 존재하는 가장 높은 진동수의 순수의식에 해당할 것입니다
물리학적으로는 초양자장으로 불리는 상태가 아닌가 합니다
순수의식을 인지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표현하면 바탕느낌이 될 것입니다
느낌의 바탕에 대해 짐작해 봅니다
고요한 수면위에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 물결이 일어납니다
세상이 창조되는 시원이겠지요
그 처음이 바탕느낌입니다. 느낌의 분화에 따라 다양한 만물이 창조됩니다
그 이전은 모릅니다.
끝까지 알아야겠다는 집착은 프로그램화된 생각회로의 관성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몸과 마음을 작동하게 만드는 주인으로서의 느낌에 주목하는 일은
인류사에 하나의 혁명적인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정신계의 일대 혁명으로 여겨지는 석가의 연기법도 사실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실상의 세계에 대한 통찰입니다
결과적으로는 無我, 우리 몸과 마음이 주체가 아니고 수동적인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밝혀냈지만
그 원동자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입니다
연기법은 어떤 것도 혼자서는 주체성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움직일 수 없다는,
무한원인의 상호작용에 의한 총체적 관계성이라는 현상계의 원리를 밝힌 것입니다
상대성이론이나 현대 양자물리학이 이를 증명해 가는 과정에 다름아닐 정도로
대단한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실상을 알았다 해서 우리의 행동이 개체성에서 전체성으로의 삶으로
이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느낌의 도구에 불과한 생각 차원의 앎은 애시당초 행동으로 변화시킬 동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행동의 원동자로서의 느낌의 재발견은
불교차원을 넘어서는 위대한 발견입니다
또한, 그저 느껴줌으로서 근원의 세계와 함께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은
수행자에게는 지난한 고행으로부터, 종교인들에게는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보통 사람 모두에게 깨달음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느낌의 세계를 알게 된 지금
논리가 논리를 낳는, 원인자를 모른 채 생각만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철학과 종교 등 모든 인간의 사유체계에 기반한 정신문화에 대해서는
당분간 더 이상의 관심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사과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사과를 직접 먹고 그 맛을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느낌에 대한 생각도 접고, 그 속에 직접 들어가
내안의 다른 세계가 말하는 소리에 귀기울이고 전념해 보고자 합니다
[출처] 생각에서 느낌으로 (가슴명상-존재의 꽃을 피우다 (마음치유-깨달음)) |작성자 tnwlsrl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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