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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18 11:00
곽암선사 십우도[十牛圖]
 글쓴이 : 디앤아이
조회 : 182  

1. 심우(尋牛 : 소를 찾아 나서다)

      소를 찾는 동자가 고삐를 들고 산속을 해메는 모습입니다.
 
      처음 발심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써 공부에 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게송
 
            '아득히 펼쳐진 이 세상의 초원에서

              우거진 숲을 헤치고 소를 찾아 나섰다.

              이름 없는 강을 따라가다가 첩첩 산중에서 길을 잃었구나.

              힘은 빠지고 마음은 피로한데 소를 찾을 수가 없도다.

              단지 들리는 것은 늦저녁 나무가지에서 매무 우는 소리뿐

       
            序
 
              '본래 잃지 않았는데 어찌 찾을 필요가 있는가.

              다만 자신의 참된 본성을 등진 까닭에

              소를 찾지 못한 것뿐이다.

              감각이 혼미한 가운데 그의 발자취를 잃었으니

              집은 점점 멀어지고 수많은 갈림길에서

              어느 길이 옳은지 분간할 수 없다.

              탐욕과 두려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이

              어지럽게 일어나네.


    - 소는 우리의 에너지와 생명력, 내적인 힘, 의 상징입니다.

    - 우거진 숲이란 욕망,탐욕,욕정 등을 말합니다. 무성한 욕망의 숲에서 나의 소를 잃어 버렸습니다.

    - 지금 우리의 삶은 이런저런 욕망에 쫓아 달리는 게임에 불과하며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공허하게 끝난 꿈,

      좌절된 꿈의 파편들이 산처럼 쌓일 뿐입니다.

    - 내 안에 나만의 운명이 깃들어 있습니다. 운명(나의 에너지)을 스스로 개척(발견)해야 합니다.
     
      (우유부단하게  결정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의 결정에 맡기지 말고, 다른 사람이 찾아줄 수도 없습니다.)

      길을 잃을 가능성이 많고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세상에는 여기저기 헤매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수없이 많고 실수를 저지를 용기가 있어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요 

      다시 제 길을 찾았을 때에는 한 때 길을 헤맸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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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견적(見跡 : 자취를 보다)

    동자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수행자는 순수한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하다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는 것을 소의 발자국으로 상장하는 것입니다.

     
          게송
       
          '물가의 나무 이래에서 드디어 발자국을 발견했다.
 
            방초(芳草)를 헤치고서 그의 자취를 보았다.

            설령 깊은 산 속에 있다 해도

            하늘을 향한 그 코를 어찌 숨길 수 있으리오


          序

          경전에 의해 그 뜻을 알고
 
          가르침을 이해함으로써 소의 발자국을 본다.

          온갖 기물(器物)이 똑같이 쇠로 만들어졌듯이

          우주 만물이 자기라는 사실을 배운다.

          정사(正邪)를 가려내지 못한다면

          어찌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으리오.

          아직 문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일시적으로 발자국을 보았다.


 - 불편한 것들(탐욕,두려움,소유욕,질투,증오심,분노)을 떼어 내기만 하면

  완전한 영광 속에 존재하는 소(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구도의 길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며 위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조금의 사념도 일어나지 않는 홀로 있음을 통해서만 신이 우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깊은 홀로 있음 안에서 지성의 불꽃이 환한 빛을 발하며 눈을 뜨고 우리의 존재가 열립니다.

-  군중의 의 일부에서 빠져나오세요.  추종하지 말고 이해하세요. 참된 이해는 기적적인 것입니다.

  불교도가 아니라 붓다가 되어야 하고, 기독교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 삶을 신뢰하고 맡기세요 강둑의 죽은 나무가지를 붙잡고 있거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싸우지 마세요

  그러면 삶의 강물이 우리를 궁극의 바다로 데려갈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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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견우(見牛  : 소를 보다)

      동자가 멀리서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 모습입니다.

      이는 수행자가 사물의 본성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웠음을 뜻합니다.


      게송
 
        노란 꾀꼬리 가지 위에 지저귀고

        햇볕은 따사하고 바람은 서늘한데

        언덕의 푸른 수양버들

        여기에 소가 숨을 곳은 없다.

        어느 누가 위풍당당한 소뿔을 그려낼 수 있으리오


        序

        소리를 쫓아 들어가니 그 근원을 감지한다.

        육감(六感)이 하나로 녹아들자마자 문 안으로 들어선다.

        어디로 들어가든 소의 머리를 본다.

        물 속의 소금과 같고

        물감 속의 색채와 같으니,

        가장 미미한 것도 진아와 떨어져 있지 않다.


- 내면으로 들어가세요

  자신의 에너지와 조우 하세요. 그것을 맛보고 그 에너지 속으로 녹아들어가세요.

  에고란 다른 사람들이 님에 관해 말한 내용을 긁어모아 한데 쌓아 놓은 것입니다.

-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한 자기 자신의  앎이 불가능해집니다.

-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민감하게 깨어 있을 때 꾀꼬리의 노랫소리가 들리며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예민하게 자각할 때, 햇볕은 따사하고 바람은 서늘하며

  언덕의 수양버들은 푸릅니다.

- 선택 없는 각성을 통해 마음이 사라지며 의식이 협소할 때에만 살아남고 의식이 광활하게

  열려 있는 상태에서는 마음은 생존하지 못합니다.

  ( 우리 가슴속에 콩알만 한 우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확대해보세요 온몸으로 꽉 채워 보세요

    온몸을 지나쳐 더 키워 보세요. 극히 협소하고  편협한  마음은 두렵고 어찌할줄을 몰라서 생각을 멈춤니다..)

-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하며 모든 감각이 깊은 화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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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득우(得牛 : 소를 잡다)

        동자가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입니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신성,진리)을 꿰뚤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합니다.

        즉, 이제 본성을 찾았지만 아직 번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더욱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때의 소는 검은색을 띤 사나운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아직 삼독(탐내고,성내고,어리석은 마음)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이라는 뜻에서 소의 빛깔을 검정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게송

            온 힘을 다해 그 놈을 잡았으나

            힘이 세고 사나워 다스리기 어려워라.

            어느 땐 구름보다 더 높은 고원 위에 있고

            어느 땐 들어가기도 힘든 깊은 골짜기 안에 서 있도다.

           
            序

            오랫동안 숲 속에 숨어 있더니

            오늘에야 비로소 그를 잡았네

            뛰어난 경치에  흘려서 방향을 잡기 어려운데

            싱그러운 수풀이 그리워 헤매고 있네.

            고집센 마음이 여전히 날뛰고

            야성이 남아 있으니

            그를 순하게 길들이려면

            채찍을 들어야 하리라.


- 소는 우주 전체의 에너지 입니다. 우리는 이 에너지의 부분이죠.

  생동감 있고 예민하게 깨어 있다면 이 전체(whole)를 느낄 수 있습니다.

- 마음(에고,사념체)은 우리의 내적인 탐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면 격렬한 싸움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오랬동안 지배자의 특권을 누려 왔고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데 익숙해 있기에 거세게 저항할 것입니다. 몰래 뒤를 밟다가 틈만 보이면 일순간에

  우리를 덥쳐 때려 눕히고 다시 우두머리가 되려 할것입니다.

  (마음은 우리가 신의 사원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어 유혹하고 엄포놓고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않고 방해할 것이며. 신의 사원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마음은 우리를 떠날 것입니다.)

- 한번이라도 무심의 향기를 맡게 된면 우리는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이 마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소(에너지,진리,불성,신성)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그런데 투명한 마음의 벽, 사념의 벽에 가려막혀, 벽이 있다는 것초자 알기 힘듭니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한번도 놓쳐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 허상(사념,욕망,상상,꿈,허구)을 떨처버리면 돌연 우리는 실제 안에 존재합니다.

  세상을 버리는 게 아니고 우리가 실제로 갖고 있지 않는 것을, 손에 없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 마음의 죽음은 우리의 삶이며, 마음의 삶은 우리의 죽음입니다.

- "깨어 있어라. 꾀꼬리의 노랫소리를 들어 보라.  태양이 우리를 어루만지게 하라. 따스한 햇살을 느껴 보라."

  " 산들바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통과하게 하라. "

  "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깨끗이 청소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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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우(牧牛 : 소를 길들이다)

          동자가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가는 모습입니다.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삼독(三毒 : 탐.진.치)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선에서는 이 목우의 과정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한번 유순하게 길들이기 전에 달아나 버리면

          그 소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데서 특별히 주의를 준 것입니다.

          즉, 깨달음 뒤에 오는 방심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때의 소는 길들이는 정도에 따라 차츰 검은색이 흰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으로 묘사 됩니다.


          게송

            채찍과 고삐를 떼놓지 않음은

              멋대로 걸어서 진흙 속으로

              들어갈까봐 염려하기 때문이다.

              잘 길들이면 자연히 온순해지리니

              그때에는 고삐를 잡지 않아도 주인을 따르리라.

           
              序

              앞생각이 일면 뒷생각이 이어서 일어나니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진실이 되고,

              미망(迷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거짓이 된다.

              미망은 대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의 마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코뚜레를 잘 잡고 한점의 의심도 일으키지 말라.


- 소는 여러 진흙길에 익숙해져 있어 채찍(자각)과 고삐(수양)를 사용하지 않으면 잡은 소를 다시 놓칠지도 모름니다.

  (자각없는 수양은 위선자가 될 수 있고 좀비나 로봇이 될 수 있습니다.)

- 마음의 에너지는 항상 오래된 습관과 패턴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수양을 통해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 사랑의 차원으로 에너지가 흘러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수양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에너지가 솟아오를 때

  그 에너지가 성욕이 아니라 사랑 안으로 흐르고, 수양을 해야만 에너지가 욕정이 아니라 자비 안으로, 탐욕이 아니라

  나눔의 정 안으로 흘러들 수 있습니다.

- 진리는 진실하고 참된 사람들에게만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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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집으로 가다)

          흰소에 올라탄 동자가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로 더할 나위없이 즐거운 때이다.

          드디어 망상에서 벗어나 본성의 자리에 들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이 때의 소는 완전한 흰색으로서 특별히 지시를 하지 않아도 동자와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며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게 된다.

         
          게송

          소를 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가노라니

          나의 피리 소리 저녁놀에 실려간다.

          한 박자 한 곡조가 한량없는 뜻이려니

          이 가락을 듣는 사람 모두가 나와 어울릴 것이다.


          序

          투쟁이 끝났으니

          얻음도 잃음도 모두 비웠구나

          시골 나무꾼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이들의 풀피리를 불어 보노라

          태평한 모습으로 소 등에 누워

          하늘의 구름을 쳐다본다.

          불러도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고

          뒤에서 끌어당겨도 곧장 앞으로 가노라.

- 우리가 주인이 아닐때에는 재물,사람,권력,지위.명성을 향해 에너지가 마구 마구 누출됩니다.  그러나 일단 주인이 되면

  에너지가 집으로 흘러들기 시작합니다.

- 우리가 주인이라면 마음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르고, 우리가 주인이 아닐 때에는 우리가 그림자처럼 마음을 따라갈

  것입니다.

- 소를 찾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온 가슴으로 매진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직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미지근한 태도로 내면의 근원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억압을 초래하고

  분열시키고 병들게 됩니다.

- 관찰하고 주시하세요. 관찰은 연금술과 같습니다. 그것은 에너지의 질을 바꿔놓은데, 분노에 사용 되던 에너지가 자비
 
  로 변형되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씨앗 안에 나무가 숨어 있듯이  분노 안에 자비가 숨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들여

  다 보는 깊은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 참된 성자는 어린아아와 같습니다. 순박하기 이를 데 없어서 거의 바보처럼 보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자신을

  신의 바보로 부르곤 했으며, 노자 역시 "나만 빼놓고 온 세상 사람이 영리하다. 나는 바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논리를 고집하지 않고 머리에 매달리지 않으면 생기 넘치는 삶을 살며 에너지가 강물처럼 흘러 얼어붙은 것이 없고

  모든 경계선이 허물어져  융해되어 우주 전체와 하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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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만 남아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소는 마지막 종착지인 심원(心源)에 도달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방편은 잊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본각무위(本覺無爲)로 돌아 왔으니 쉬지 않고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는 뗏목을 타고 피안에 도달했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교종의 가름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게송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사람은 한가롭고 소 또한 편히 쉬네

                붉은 해가 솟아올라도

                여전히 꿈꾸는 것 같으니

                채찍과 고삐는 초가삼간에 부질없이 놓여 있네.

 
                  序

                  법(法)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니

                  임시로 소를 주제로 삼았노라.
 
                  올가미와 토끼의 이름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고

                  물고기와 그물이 구별되는 것과 같다.

                  흡사 금이 광산에서 나오고

                  달이 구름을 벗어난 것과 같으니

                  한 줄기 차가운 빛은

                  겁(劫) 밖의 위음(威音)이로다.

- 이제 그대는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방임하고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완전히 맡겨 버리면, 헤엄을

  치려는 노력도 전혀 없이 모든 것을 맡기고 흘러가면 그대의 몸과 강물이 하나로 융해된다. 경계선이 무너지고

  강물과 하나가 되고 더 없는 환희를 경험하게 되며 작지도 크지도 않는 전체가 된다.

- '존재하지 않는 것'  ' 깊은 방임 속에서 일체를 내맡기는 것, 삶의 에너지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평정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

-  모든 싸움이 멈추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왕중의 왕(그대)께서 지금의 쩨쩨하고 하찮은 자아, 추악한 자아 머슴들

  을 따라해서야 되겠는가


- 구름(사념,마음)은 달(신성.그대)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달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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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인우구망(人牛俱忘 : 소도 사람도 모두 잊다)

          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 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 빈 원(圓)상만 그려져 있다.

            즉, 정(情)을 잊고 세상의 물(物)을 버려 공(空)에 이르렀다는 것을 비유한 것.


            게송

            채찍과 고삐, 사람과 소 모두 비었으니

            이 허공은 너무나 광막하여 소식을 전하기 어렵구나

            붉은 화로의 불꽃이 어찌 눈을 용납하리오

            이 경지에 이르러서야 조사(祖師)의 발자취를 보노라


            序

            범속(凡俗)함이 사라지고

            거룩한 뜻(聖意)도 모두 비어 있다.

            이제 나는 깨달음의 상태를 구하지 않으며

            깨달음이 없는 곳에 머물지도 않는다.

            범속함과 거룩함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니

            천 개의 눈으로도 나를 엿보기 어렵다.

            온갖 새가 꽃을 물고 와 공양하는 따위는

            한바탕 웃음거리밖에 안 되리라.

- 거대한 무(無)가 솟아오르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이 공(空)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고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 이며 그 안에는 어떤 경계선도 없습니다.

- 채칙,고삐,사람,소 이 모든 것은 눈발의 뜨거운 화로속으로 사라지듯 엄청난 에너지 속으로 사라집니다.

- 여기에 이르러 붓다가 어디로 갔는지 발견할 것이며 깨달은 자들의 향기를 맡을수 있으며 새로운 차원의 문이 열립니다

- 그대는 이미 그대가 찾고 있는 '그것' 입니다.

- 버리는 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 '버림' 마저도 버리는 법을 가르친다.. 세상을 초월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초월' 마저 초월하는 법을 가르친다. 비로소 원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 모든 범주를 초월할 때 궁극적인 경지가 열립니다. 연꽃이 되어서 물 속에 있되 물에 젖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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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반본환원(返本還源 : 근원으로 돌아가자)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로서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즉, 그의 본성은 본래 청정하여 아무 번뇌가 없어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보게되며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얻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게송

                근원으로 돌아와 돌이켜보니

                너무나 많은 발걸음을 옮겼구나

                차라리 애초부터 장님이나 귀머거리 같은 것을!

                암자 안에 거주할 때에는

                밖의  사물을 인지하지 않나니,

                강물은 고요히 흐르고 꽃은 절로 붉구나

       
              序

                본래부터 진리는 청정하다.

                고요한 경지에 머물러

                만유(萬有)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본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다시 형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

                물은 맑게 흐르고 산은 푸른데

                홀로 앉아 세상의 흥망을 지켜보노라.

- 아무런 행위도 없는 깊은 무위(無爲)의 상태에서만 일어나는 탄생,죽음,사랑,명상 등은

  우리의 행위에 의해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 점프(jump) 하라. 점프는 에고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당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전체(the whole)가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며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 붉은 꽃은 그저 붉다. 붉다는 것을 마냥 행복하게 받아들인다. 붉은 꽃이 아닌 다른 꽃이 되려고 흉내내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욕망,모방,질투,경쟁심 때문에 참된 본성에서 어긋나 있습니다.

- 그대는 오직 그대 자신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대가 바로 이상향입니다. 그대가 바로 그대의 운명입니다.

- 그대 자신으로 존재하세요 이루어야 할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깨어 있고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사세요

  그러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즉시 모든 문제가 사라집니다. 그대가 명상을하고 있는데 개가 짖는다면

  개가 짖는 것을 맘껏 즐기세요 

- 만물이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대 또한 그대만의 본성에 따라 존재합니다. 세상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

  합니다. 완벽하게 아름답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은 잇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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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입전수수(入廛垂手 : 저자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집니다.

        육도중생의 시장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합니다.


                게송

                맨가슴 맨발로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니

                재투성이 흙투성이라도 기쁨이 가득,

                수명을 연장시키는 비법 따위를 쓰지 않아도

                마른 나무에 당장 꽃이 피게 하는 구나.


                序

                싸리문 닫고 홀로 고요하니

                천 명의 성인도 나를 알지 못한다.

                내 정원의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왜 옛 성현의 발자취를 더듬거려야 한단 말인가?

                술병을 차고 저잣거리에 들어가고

                지팡이 짚고 집으로 돌아간다.

                술집에도 가고 시장에도 가니

                내 눈에 보이는 사람 모두가 깨달았도다.


- 우리는 상대방안에 깃든 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당신 안의 신에게 절합니다.'

- 이 세상이 열반이며 깨달음이며 궁극적인 경지이기에 다른 세상은 없습니다.

- 육체와 동일시되어 있지 않다면, 의식이 깨어 있음이며, 주시하는 영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죽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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