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10-1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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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 이규원 옮김. 노블마인 펴냄.
"나는 어릴 때 종종 길을 잃었는데, 미아가 되면 그 공간에서 좀처럼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꼈다. 내 이야기의 바탕에는 그 공포가 놓여있다."
▲ <야시>
ⓒ 노블마인
<야시>의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이 말처럼, 누구나 어린시절에 한번 쯤은 길을 잃어버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곳은 번잡한 대도시 한복판일 수도 있고, 사람 많고 복잡한 시장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변두리의 뒷골목일 수도 있다.
적어도 어린시절에는 자신이 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낯설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십중팔구 그 낯설음은 두려움으로 변하게 된다. 그 두려움이란 귀신과 요괴가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공포가 아니다.
어쩌면 이 낯선 곳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에 근거한 공포다. 어린시절에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주위의 모든 것들이 요괴처럼 느껴지는 것도 충분히 있을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에서 한걸음 더 상상력을 가지고 나아가보자.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다. 주위의 풍경은 도저히 현실의 모습 같지가 않다. 길을 찾으려고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는 이 곳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주위에서 실제로 요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쓰네카와 고타로의 책 <야시>에는 이런 이야기 두 편이 실려 있다. <바람의 도시>와 제1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한 <야시>가 바로 그 두 편이다.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지만 <야시>는 호러라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판타지라고 해서 <반지의 제왕> 같이 중세 서양을 배경으로 한 스케일이 커다랗고 서사적인 판타지는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현실에서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있을 것 같은 다른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그 다른 세상에는 요괴가 있고 걸어 다니는 시체가 있고 인간으로 모습을 바꾼 신이 있다. 하지만 그 괴물들은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간 인간에게 특별히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그 세상에는 그 세상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그리고 그 규칙을 깨지 않는 이상, 인간도 어느 정도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는 있다.
일본에는 팔백만의 신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 요괴의 수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신과 요괴, 인간이 어우러져서 공존하는 세상, 이 정도면 꽤나 매력적인 판타지의 장소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다른 세상'에 관해서 느꼈던 두려움은 이제 호기심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여행하고 싶다는 모험심이 생겨나기도 할 것이다.
<바람의 도시>의 주인공은 바로 이런 모험심 때문에 친구와 함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끝없이 이어진 것만 같은, 숲이 우거진 길을 걸으면서 이들은 다른 세상의 공기를 접하고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속 방랑하는 사람이 있고, 자식을 타인에게 맡기고 떠나는 여자가 있고 총을 들고 다니면서 자신이 경찰이라고 뻐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얽히고설켜서 주인공이 가는 길을 따라다닌다. 짧은 판타지 소설치고는 꽤나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야시>의 무대도 이와 비슷하다. 몇 년에 한번씩 요괴들이 세우는 시장, 야시. 오직 선택받은 인간만이 그 시장으로 들어 갈 수 있다. 그 시장에서는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다. 자유와 젊음, 특별한 능력,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 심지어는 살아있는 인간까지도 사고 팔 수 있다.
<야시>의 주인공은 어린시절에 우연히 길을 잃고 헤매다가 이 시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사서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몇 년 후에 다시 그 시장으로 향한다. 그때부터 짧지만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오토바이로 호주와 오키나와, 홋카이도 등을 여행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 공포'를 경험했던 작가가, 성장한 후에 스스로 오토바이를 끌고 낯선 곳을 여행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어쩌면 작가는 여행 도중에도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요괴를 만나게 되는 상상을 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야시>와 <바람의 도시> 이 두 편의 이야기로 풀어냈을 것이다.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그곳에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자극하는 무대가 있고, 가슴 설레는 모험과 낭만이 있고 역경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그와 같을 것이다. 소설을 펼쳐드는 순간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뿐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나니아 연대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타게이트>처럼 조건만 갖추어지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우리 주변 어딘가에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운이 좋아서 그곳으로 들어선다면 그곳에서는 나를 주인공으로 한 한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곳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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