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앤아이(주)-묘지이장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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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12-23 11:34

행복은 나비와 같아 잡으려 하면 달아나지만,조용히 앉아 있으면 스스로 너의 어깨에 내려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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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 거액의 돈뭉치를 뿌리는 남자가 있었다. 종로3가에서 광화문 네거리를 거쳐 남대문에 이르는 도로에 수십 억원이 집중 살포됐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다.

그러나 실제로 버리지 못해 밤잠을 설치는 거부도 있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미워서가 아니다. 자식한테는 "부모의 것과 네 것은 다르다"고 일찍부터 못을 박아놨다.

그래서 이래저래 고민이 크다. 재산이 거추장스럽다는 사실을 갖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삽으로 파서 내던져 버릴 수도 없는 고뇌의 덩어리를 끌어 안고 사는 이 거부는 오늘도 시름의 아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원고지와 맞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올해는 부동산 광풍이 서울 강남과 과천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거세게 몰아쳤다. 이는 다시 전국으로 번져 빈익빈 부익부의 재분배 현상을 극대화하며 충격과 허탈의 늪에 빠뜨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이 부동산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일할 의욕이 떨어졌다고 한다.

소설가 김용만(66) 씨. 1989년 단편 '은장도'를 현대문학에 발표해 문단에 나온 김씨는 이후 왕성한 창작활동을 펴며 '늰 내 각시더' '아내가 칼을 들었다' '칼날과 햇살' '인간의 시간' 등 작품집을 잇따라 내놨다. 마치 한에 맺힌 듯 자신과 사회의 이야기를 소설의 꾸러미로 엮은 뒤 다시 솔솔 풀어냈다.

특히 창작집 '아내가 칼을 들었다'에 실린 단편 '속도에 관하여'는 미친 놈처럼 돈을 뿌려 내던지고 싶은 그의 심경을 엿보게 한다. 불안감의 근원을 포대에 넣고 도심의 거리에 마구 뿌려놓고는 '길바닥이 꽁꽁 얼었지만 추운 것도 모른 채 황홀해한' 주인공처럼 말이다.

"허무 때문입니다. 물질적 허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는 본질적 허무 때문이지요. 소설에서 돈을 뿌리는 것은 재물의 무의미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돈이 고마운 존재이긴 하나 '나'라는 본체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저 문학적 수사일까? 아니다. 김씨는 문인이자 동시에 수백 억대 재산가이기도 하다. 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런 방법과는 숫제 거리가 먼 '바보'였지만 이 '바보'에게 돈이 물귀신이라도 되는 양 줄기차게 쫓아오니 '별수없이' 부자가 되고 말았다. 세상일이란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부자의 후예로 태어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충남 부여에서 절집 머슴인 불목하니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자랐다. 땔나무를 팔아 겨우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빈곤이라는 두억시니에게서 달아나고자 어린 나이에 가출이라는 일생일대의 대모험을 감행한다. 부산에서 용케 중학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고교 졸업장을 가까스로 챙긴 뒤에도 그는 좀처럼 고생길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토록 가난하게 자랐다면 재물에 대한 집착이 남달리 커야 할 것 같은데 그 반대인 이유는 무엇일까? 김씨는 "가난에 대한 복수심에서라도 돈에 매달려야 할 듯한데 나는 버리지 못해 안달을 한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극도의 허무에 바탕을 둔 이 같은 재산관을 이해하기 의해서는 그의 발자취를 조금 더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용산고교를 독학으로 졸업한 김씨는 한 명문사립대에 합격했으나 입학금이 없어 등록을 포기하고 만다. 그래서 찾은 삶의 도피처가 군대. 이후 중학을 나왔던 객지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 가전제품 외판원 생활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중 버스에서 경찰 모집 안내방송을 듣고 경찰계에 뛰어든다. 삶의 나락에서 헤매던 끝에 태종대 자살바위에 올랐으나 '재주없게' 결행에 실패했던 게 바로 그 직전이었다.

"사실 저의 문학수업은 경찰생활하던 강원도 바닷가에서 독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강릉, 주문진 등지에서 해안경비 업무를 맡으며 문학과 철학 등의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탄생한 작품이 '칼날과 햇살' '인간의 시간' 등입니다. 저의 소설적 고향은 동해안인 셈이지요."

하지만 경찰생활은 10년 만에 끝장났다. 정보경찰이던 김씨는 1972년 심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사표를 낸 뒤 다시 냉엄한 가난의 세계로 자신을 내던졌다. 공사판 인부, 리어카 배추장수, 포장마차 음식팔이, 자동차 세차원 등 안 해본 게 없다. 그의 말로는 스무 가지가 넘었을 것이라고 한다. 직업은 하나같이 요즘 말로 3디(D) 업종으로 변변치 못한 것들뿐이었다.

그러다 자동차 광택 사업에 뛰어들어 한때 '떼돈'을 벌기도 했으나 예기치 않은 화재로 하루아침에 훌러덩 날려 먹고 또다시 바람찬 거리로 나앉았다. 봉천동, 신림동, 대방동을 전전하던 그는 구로공단 5거리에 '춘천옥'이라는 간판으로 보쌈과 막국수 전문집을 내면서부터 팔자가 확 달라졌다. 그때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춘천옥은 구로공단 일대는 물론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릴 만큼 유명세를 탔고, 체인점을 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미국의 교포들 사이에서도 그 집 맛이 오르내릴 정도가 됐다. 그 덕분에 맛집 사장으로서 신문, TV 등 언론을 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장사가 정말 잘 됐어요. 하지만 돈과 빌딩, 도시가 싫었어요. 촌에서 농사지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 도시환경이 병적으로 싫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 경기도 양평의 산골짜기에 땅을 마련해 눌러 앉았지요.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 깊은 시골로 들어가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문학의 길을 닦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곳에 문화공간을 꾸며보자는 소박한 꿈도 있었구요."

되는 사람은 엎어지고 넘어져도 금덩어리밭으로 엎어지고 넘어지는가 보다. 15년 전 서울을 떠날 때 춘천옥을 청산한 돈으로 인근지방도시에 장만했던 건물이 개발붐을 타고 저절로 폭등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씨는 부를 끌어 안고 마냥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까? 그는 바닷물을 퍼마셨을 때의 갈증처럼 본질적 허무가 갈수록 더하다고 털어놨다. 살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할 정도로 삶과 세상이 텅 비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한다. 그 정체는 딱 꼬집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가 바로 '행복'이란다. 이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행복을 얻고싶어 내뱉는 반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요즘 세상돌아가는 모습에 대해 물어봤다. 특히나 광풍처럼 몰아닥쳤던 부동산 열풍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그는 세상이 오로지 '돈, 돈, 돈' 하는 것만 같아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 극도의 물질주의, 상업주의에 대한 거부반응은 생래적으로 큰 듯했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지나친 상업논리가 지배하고 있어요. 따뜻한 인간미 같은 덕목들이 사그리 없어지고 무너져가는 듯해요. 다들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고 할까요? 과도기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심해요. 자본주의가 인간이 선호하는 제도이겠으나 지금의 세태는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니에요."

김씨는 그동안 70여 개 나라를 돌아다녀봤는데 한국사람들의 모습은 유별나더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외국 공항에서 대기승객들을 지켜보노라면 여유가 느껴지는데, 한국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도무지 그게 보이지 않더라는 것.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우리 사회가 갑자기 큰 재산을 가져서인지 심하게 말하면 독기같은 게 흐르더란다.

부가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씨는 낭만과 여유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하나를 얻기 위해 눈에 불을 켜기보다는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버리는 여유가 차라리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복은 나비와 같아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스스로 너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는 너대니얼 호손의 행복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김씨는 이를 '풀어짐의 미학'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문학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바로 이 풀어짐의 미학을 통해 늘 안개처럼 뿌옇기만 한 행복의 실체를 건져내보려 함이다. 빈 틈 없이 꽉 짜인 세상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우리가 진짜 부자나라가 되려면 허무를 외면하지 말고 대면하고, 탐욕에 매달리지 말고 버리며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시대가 빡빡한 상업논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는 것은 아까 말한 바처럼 낭만과 여유가 없어서예요. 전통의 부자들에서는 이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지요. 경주최부잣집이 진짜 부자였던 것은 이런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죠.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고 후손들에게 당부하는 것을 요즘에 생각이나 해보겠어요?"

물론 이 같은 견해에 대해 김씨는 자신이 상식적인 인간형은 아니라고 꼬리표를 달았다. 이토록 '비정상'이 '정상'이 돼버린 세상이 싫어 얼마든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요식사업을 때려치우고 배고프고 힘들다는 문학계에 입문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랬다. 자랑같지만 자신의 순결성만은 누구보다 높다고. 문학인으로서 깊은 자부심과 자기신뢰를 갖고 있으며 수십 권으로 써내도 부족한 자신의 지난 역정을 하나하나 작품으로 풀어내겠다고도 했다.

한편으로 문학판에 대해 아쉬움과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고매함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이곳 역시 조직과 감투로 심각하게 오염돼 있더라는 것이다. 순수한 문학인이라면 선방수좌스님이 면벽정진하듯이 문학이라는 화두에 매달려야 하는데,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신경을 쓰는 풍토가 돼버렸다며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풍토가 이렇다 보니 진실로 문학하고자 하는 알짜 문인들이 허탈감과 좌절감에 빠져들고, 이는 문학의 국제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이런 분위기가 강남 등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값 폭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허탈감과 좌절감에 빠져드는 것과 이치상 똑같다고 말했다. 순결성이 뒷전으로 밀린 가운데 상업논리가 주인행세를 하는 것은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문단이 이런데 사회인들 오죽하겠느냐며 그는 내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날 문인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나는 억대 거지다"라고 당당하게 털어놨던 그는 자신이 거저 주운 부를 쓸데없이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가장 요긴하게 쓰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요즘 버릴 곳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버리되 잘 버리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그러면서 종교적 관점을 문학의 저변에 깊이 깔고서 이 '절망의 시대'에 자신의 예술혼을 노래하겠다고 다짐한다. 김남주 시인이 생전에 "오염된 한강이 한 방울의 빗물로 정화될 순 없다. 그러나 안 떨어지는 것보다 낫다"고 한 배고픈 영혼의 문학도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소설 '속도에 관하여'에서 열차를 타고 가던 등장인물들은 말한다. 열차의 속도는 100킬로 정도가 제일 쾌적하다고. 그 이상의 속도는 불안하고 그 이하의 속도는 우울해진다고. 작가 김씨는 삶의 속도를 뜻하는 열차의 속도를 통해 살아가는 지혜를 암시해주고자 한다. 빠를수록 좋다는, 달리 말해 많이 가질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의 함정에 우리는 빠져가고 있지 않은지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할까. 무한소유의 욕망은 무한속도의 질주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왕성한 창작열로 작품을 잇따라 쏟아내며 문단에서 명성을 높여가고 있는 김씨는 한때 운영했던 막국수집 춘천옥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장편소설 '소설 밥장사' 등을 쓰느라 요즘 여념이 없다. 춘천옥뿐 아니라 그가 걸어온 가시밭길은 어느새 문학의 텃밭을 기름지게 일궈주는 자양분이 돼 알토란같은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 마흔아홉에 늦깎이로 등단한 김씨는 광주대 문예창작과에서 문학수업을 받은 뒤 60대에 들어 경희대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만큼 만학도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또 한성디지털대 문예창작과 교수로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