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02-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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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국동포의 ‘恨서린 죽음’
30일 오후 10시43분, 중국동포 김모씨(48)는 지하철 8호선 천호역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졌다. 망설이지도 않았다. 목격자 정모군(18)은 “작정한 듯이 뛰어들었다”고 증언했다. 품에는 노란 서류봉투를 안고 있었다. 열차에 몸을 부딪히는 순간 봉투가 찢겨나갔다. 봉투 안에 들어있던 만원짜리 지폐가 꽃잎처럼 공중으로 흩어졌다. 경찰이 회수해보니 모두 106만원. 자신에게 사기를 친 한국인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와 2년 가까이 신산을 겪은 김씨는 그렇게 한많은 한국과의 인연을 끝냈다.
2004년까지만 해도 김씨는 중국 지린성에서 건축업을 하는 사업가였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주모씨(57)와 동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주씨가 사업자금 400만위안(4억8000만원)을 가로채 한국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김씨는 빚더미에 올랐다. 채권자들의 압박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씨는 부인과 이혼까지 했다. 결국 2005년 2월 한국행을 감행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인 주씨를 잡기 위해서였다.
한국에 들어온 김씨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주씨 추적에 나섰다. 일하는 틈틈이 경찰서와 법원을 찾아다니며 법에도 호소했다. 그러나 사기꾼 주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힘겹게 찾아간 주씨의 동네에서는 더 절망적인 소식을 접했다. 주씨가 부인과 위장이혼한 뒤 모든 재산을 명의이전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주씨를 잡더라도 사기당한 재산을 되찾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이후 김씨에게 하루하루는 지옥과 같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중국에 남겨두고 온 아들과 딸이 눈에 밟혔다. 빚쟁이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었다. 결국 30일 밤 김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다음날 서울 성동구 ㄷ병원 장례식장에 영정도, 가족도 없는 쓸쓸한 빈소가 마련됐다. 허름한 차림의 조문객 서너명이 전부였다. 김씨는 죽어서도 맘 편히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 가족이 없어 장례동의서를 발급받지 못해서였다. 일터 동료들이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가족의 장례동의서를 팩스로 받아낸 뒤에야 간신히 절차가 진행됐다. 김씨의 시신은 1일 화장될 예정이었지만 중국에 있는 아들과 딸이 조만간 국내로 입국하기로 해 장례절차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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