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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러브레터` "배우에게 정년은 없다. 두 발로 서서 호흡할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서야 한다."(박정자)"연극을 소명으로 알고 살았다. 음식처럼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신구)한동안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 역에 그치던 원로 배우들이 요즘 들어 연극 무대를 달구며 관객몰이를 주도하고 있다. 단순히 이름값에 기대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티켓 파워로 판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방탄소년단(BTS)에 빗대 '방탄노년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K팝 분야는 10·20대, 뮤지컬 분야는 30·40대가 주류라면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는 70·80대 배우가 흥행을 좌우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실제로 원로 배우들은 티켓 판매 실적을 이끌고 있다. 신시컴퍼니가 6년 만에 다시 올린 연극 '햄릿'은 출연진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불상사로 공연이 10번이나 줄었지만 전무송, 권성덕,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등 원로 배우 9명에 힘입어 큰 주목을 받아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순재가 이끈 '리어왕'은 3시간이 넘는 대작 연극인데도 전석 매진돼 8회 앙코르 공연을 추가했고, 오영수와 신구가 더블 캐스팅으로 손을 잡은 '라스트 세션'은 오영수가 '오징어게임'으로 미국 골든글로브 TV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데 힘입어 공연이 2주 연장됐다.



연극 `아트` 앞으로 막을 올리는 신작들에서도 원로 배우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특히 요즘에는 기존 스테디셀러 연극들이 '시니어 버전'을 새롭게 만들어 선보이는 경우도 많다. 지난 17일 개막한 '아트'에는 이순재, 백일섭, 노주현이 친구로 출연한다. 25년 동안 절친하게 지내온 세 친구 중 한 명이 그림 한 점을 구매한 뒤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유명한 블랙코미디 연극이지만 원로 배우들이 나서며 극의 맛이 또 달라졌다는 평이 나온다. '아트'를 맡은 성종완 연출가는 "노령이시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신 원작 설정을 그대로 유지했는데 백일섭 선생님께서 나이 많은 어머니를 재현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엄청 웃고 좋아하시더라"며 "원작의 큰 틀을 가져가며 대사 등에 약간씩 변화를 준 정도인데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연극에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니 작품의 행간이 잘 살아나 드라마가 나온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음달 6일 막을 여는 연극 '러브레터'에서도 배종옥·장현성 조합과 함께 박정자·오영수 조합의 시니어 버전이 함께 공연된다. 두 명의 배우가 앉아 333통에 달하는 편지를 넘기며 낭독하는 독특한 형식의 연극인 만큼 배우들의 조합이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경택 연출가는 "극중 인물과 유사한 나이인 배종옥, 장현성 배우가 활력 있게 감정을 잘 드러낸다면 박정자, 오영수 선생님은 오랜 세월 함께한 친밀감 있는 커플의 모습을 엄청난 연륜으로 살려서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콘텐츠가 다양화되면서 앞으로도 노년층이 비중 있게 나오는 공연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최근 노년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내용을 담은 대본이 늘어나고 있다고 짚었다. 권지혜 동국대 연극학부 객원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관객과 배우의 경계가 사라지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연극도 많이 시도되면서 이제는 젊은 역할을 젊은이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며 "원로 배우들은 진부하거나 올드할 수 있는 스토리도 조금 더 밀도 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설령 공연 중에 대사를 깜박하더라도 그런 즉흥적인 순간들과 그 간극마저도 인물의 깊이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