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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훈 > > “치욕을 기억하라!” > > 3년 만에 선보이는 전작 장편『남한산성』에서 김훈은 조국의 가장 치욕스런 역사 속으로, 가장 논쟁적인 담론 속으로 곧장 뛰어든다. 이 점에서‘남한산성’은 작가 이력에 새로운 마디를 이룬다. > 앞선 소설『칼의 노래』와『현의 노래』역시 역사를 다루지만, 그것은 역사의 무게보다 존재의 무게에 방점을 둔다. 『남한산성』은 조선 왕이‘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하고 있다. 47일간 갇힌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무섭도록 끈질긴 질감을 보여준다.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이고, 씻을 수 없는 역사였다. > 김훈 특유의 냉혹한 행간 뒤에 숨겨진 뜨거운 말의 화살들은 독자를 논쟁의 한가운데로 내몬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작가는 주화를 편들지도, 주전을 편들지도 않는다. 다만 지도층의 치열한 논쟁과 민초들의 핍진한 삶을, 연민을 배제한 시각으로 돌아볼 뿐이다. > > 왜‘남한산성’인가? > >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 --- 김훈의『남한산성』중에서 > > > 김훈은 370년 전의 치욕을 왜 21세기인 지금 다시 꺼낸 것일까? 작가는 무엇보다 ‘치욕을 기억하라 > (memento infamia)’고 말한다.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더럽혀지는 인간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역사가 삶과 죽음의 기록이라고 할 때, 치욕의 역사는 살아 낸 삶의 이력이다. 이 치욕이 단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미래형이 될 수 있음을 작가 김훈은 에둘러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예스24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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