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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은이: 피에르 쌍소 > 옮긴이: 김주영 > >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 > 흔히 느린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들으며, 매사에 동작이 굼뜬데다가 서투르다는 말도 듣는다. 심지어 매우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워낙 행동이 느려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좀 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여유 있는 동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도 우아함이라고 보기 보다는 운동신경이 느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그들은 > 일을 할 때도 온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대강대강 시간만 때운다는 의심을 받아야 한다. > > > 현대인들은 머리 회전이나 동작이 느린 사람보다는 민첩하고 빠릇빠릇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후자들은 잽싼 손길로 식탁을 정리하면서도, 나지막하게 부탁하는 소리까지 금방 알아듣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상대방의 요구에 응해 준다. 뿐만 아니다. 속셈에서도 그들을 당할 자가 없다. 그들의 신속한 동작, 재빠른 반응, 예리한 시선, 날씬한 외모, 선명한 윤곽 속에는 반짝이는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한 마디로 그들은 활발하고 재기발랄하다. "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걱정할 게 없어요. 어쩌다 곤경에 빠졌다 해도 금방 헤쳐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 > > 그러나 나는 내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느림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나는 굽이굽이 돌아가며 천천히 흐르는 로 강(江)의 한가로움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거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끝물의 과일 위에서 있는 대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9월의 햇살을 몹시 사랑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에 고귀하고 선한 삶의 흔적을 조금씩 그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에 젖는다. 시골의 작은 마을 카페. 하루의 노동을 끝낸 사내들이 가득 채운 포도주 잔을 높이 치켜든 채 그 붉고 투명한 액체를 가만히 응시한다. 지그시 바라보다가 드디어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가 마시는 모습은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수백 년이 넘는 아름드리 나무들. 그들은 수 세기를 이어 내려오면서 천천히 자신들의 운명을 완성해 간다. 아주 천천히. 그것은 영원에 가까운 느림이다. > > >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여진다. 반대로 기다리기 싫다는 이유로 점심 시간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구내 식당으로 달려가거나, 수업 시간에도 정신 없이 뛰어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야만 직성이 풀리고,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도서관으로 어디로 항상 종종걸음을 치곤 하던 친구들의 태도는 왠지 신경에 거슬렸다. 그런 친구들은 언제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옷도 어른들처럼 입으려 했고, 어른들처럼 권위를 부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한 번 소홀하게 넘어가 버린 유년기는 영원히 소멸되고 돌아오지 않는 법인데.... > > > 나는 가끔씩 시골 농가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농가 주변에 슬쩍 한 바퀴 돌아본 것만으로 '시골 사람들의 정신 구조'를 전부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황급히 도시로 돌아가서, 시골에서 만났던 촌뜨기들을 비웃으며 시골 여행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곤 하지 않던가. 우리는 그 무례하고 경솔한 방문객들을 '파리지앵"이라고 불렀다. > > > 그렇게 말하는 나는 어떤 편일까? 나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들, 모든 계절들을 아주 천천히, 경건하고 주의 깊게 느켜가면서 살기로 결심했었다. > > > 그러나 세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빨리 달려갔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독일 기갑사단들이 프랑스를 침범한 후 전국을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40일도 채 안 되었다. 오늘날 이렇듯 끔찍하게 빠른 삶을 살아가는 데 적응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미처 삶 속에 들어가지 못한 채 아직도 길거리를 서성대고 있다. 누군가가 자기들을 이 곤경에서 구해 내 호송대에 합류시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그것은 헛된 기다림일 뿐이다. > > > 어쩌면 우리의 이성(理性)은, 어쩔 수 없는 현대의 상황 앞에 그냥 굴복해 버리고 말자고 속삭이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반대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허둥지둥 바쁘게 움직이는 생활로 부터 결연히 벗어나자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게 후자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등을 떼미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하나 있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정신 없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처럼 바쁘게 살아온 대가로 그동안 고이 아껴서 잘 감아왔던 자유로운 시간의 실뭉치들을 언젠가는 조금씩 풀어 가며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많은 과제들 때문에 시달리는 일 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시간들, 하지만 우리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 과연 그렇던가? 이상하게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군분투하는 피곤한 삶으로부터 해방될 순간을 항상 고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뭔가 결핍된 듯한 갈등 속에서 쉼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 > > 독자들은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게 될 '느림' 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곧 이해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느 한 기간을 정해 놓고서 그 안에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럿은 모든 것이 우리를 서두르게 만들고 잇는 이 사회, 그리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 요구에 따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과제이다. > > > 나는 이런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 우리에게 한결같은 평안함을 보장해 주는 몇 가지 태도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 > > 한가로이 거닐기: 나만의 시간을 내서 발걸음이 닿는 대로 풍경이 부르는 대로 나를 맡겨 보면 어떨까? > > > 듣기: 신뢰하는 이의 말에 완전히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가? > > > 권태: 이는 아무것도 애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사소한 일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인정하고 애정을 느껴 보면 어떨까? > > > 꿈꾸기: 우리의 내면 속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희미하면서도 예민한 의식을 때때로 일깨워 보는 것은 어떨까? > > > 기다리기: 자유롭고 무한히 넓은 미래의 지평선을 향해 마음을 열어 보는 것은? > > > 마음의 고향: 내 존재 깊은 곳에서 지금은 희미하게 퇴색되어 버린 부분 , 시대에도 맞지 않는 지나간 낡은 시간의 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면? > > > 글쓰기: 우리 안에서 조금씩 진실이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음의 소리를 옮겨 보는 것은 어떨까? > > > 포도주: 지혜를 가르치는 학교, 그 순수한 액체에 빠져 보는 것은? > > > 모테라토 칸타빌레: 절제라기보다는 아끼는 태도, 그 방식을 따라 본다면? > > > 이런 경험 속에서 볼 때,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잇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 >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약간 흥분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심하지는 않지만, 다분히 철학적인 어투로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다. 감동스러운 기분에 젖어 있었다고나 할까........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느림과 신속함이 서로 열띤 논쟁을 벌이는 불확실한 대지 위에서 한가롭게 거닐고 싶다는 욕구에 내내 사로잡혀 있었다. 나 역시 무조건 느림의 편에 만 손을 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 말이지 활기찬 동작, 생동감 있는 태도들 그 누구라서 찬양하지 않겠는가? 생동감 잇고 활기찬 사람은 언제나 민첩하게 행동함으로써, 자기 통제력과 기량과 영감이 뛰어나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세이야의 이발사, 그 쾌활하고 민첩한 피가로에서 어찌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으랴! > > > 느림과 신속함이 벌이는 열띤 공방전, 그 열전 속에서 나는 검사의 역을 자처했다. 하지만 오해 마시길! 내가 맡은 검사역은 매우 부드럽고 이해심 많은 역이었으니까. 우선 나는 이미 진행중이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최대 속도로 몰아가는 자들, 피곤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문화적 열정에 대해서도 경고를 한다. 물론 자신의 삶을 온갖 형태의 문화 보급에 헌신하고, 그 사실에서 자신의 삶의 정당성을 찾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감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나는 이 공방전에서 너무 심술궂지 않으면서도 제법 신랄하게 문제점을 짚은 검사였기를 바란다. 또한 독특한 시각을 가졌다는 점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어쨌든 나의 논고가 이성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었기를 바란다. > > > 나는 몇 가지 이론적인 이상(理想)들에다 정겨운 빛깔을 입혀 주고 싶었다. > > > 뒤늦은 도시 계획: 우리는 한편으로는 사람과 상품의 자유로운 유통을 구속하지 않도록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장소 안에서 살고 머물 수 있도록 신중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 > 분주하지 말기: 일상의 삶에서 얻어지는 작은 교훈들을 한 묶음 모아 작별의 꽃다발을 대신하려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 살짝 스치기만 하되 움켜잡지 말 것, 움켜잡는 순간 우리는 분주한 삶 속으로 빠져들고 말 테니까. 세상과 타인을 조사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태도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느림에 관한 이야기를 호의적으로 읽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 > > 우선 권태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가? 또 지금은 잠시 빠진 우리의 시골 고향, 아니 솔직히 말해서 황폐해졌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마음속의 시골 고향, 그 고향을 한 번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모험을 요하는 고독한 글쓰기는 도 어떨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기다려 보는 것은? 활짝 펴지 않고, 신을 향해 다소곳이 모은 손도 아릅답지 않은가? 포도주가 지닌 독특한 지혜에도 귀기울려 보자. 혹시나 이러한 태도들이 세상에 대한 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이보다는 좀더 고상하고 초연한 다른 길, 말하자면 세상을 등진 유배의 길을 선택 하는 것이 더 나은 건 아닐까? > > > 나는 내가 세상에 대해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란 내게 주어진 행운, 그것도 두 번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행운이라고 행각한다. 삶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균형 상으로 볼 때, 기쁨의 총체가 고통의 총체를 넘어선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삶을 행운의 기회로 여기는 까닭은 매순간 살아 있는 존재로서 아침마다 햇살을, 저녁마다 어두움을 맞이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의 만물이 탄생할 때의 그 빛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소나 불만스러운 표정의 시작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 대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며? 이 세상이 계속해서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내가 조금씩 아껴가며 꺼내 놓고 싶은 행운인 것이다. > > > 삶. 그것은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햇살처럼 좍 퍼져 나간다. 그것은 세차게,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기보다는 섬세한 작은 물방울들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강한 힘이기보다는 부드러운 빛과 같은 것이다. > > >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부여된 이 삶이라는 특권을 참되게 누리기 위해서, 나는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또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無)라든가 영원에 가까운 허무 속으로 숨기 위해서도 아니다.그것은 오직 시간에게 쫓기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 > > 나는 정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제안들로 내 공간을 잔뜩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그래서 그들의 제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 책의 마지막 몇 페이지 안에 분명하게 밝혔다. 나만의 리듬에 맞추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팔자가 내게 운명지어 준 리듬에 맞추어 조용히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어 달라고 감히 그들에게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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