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감동을 실현하는 기업 - 디앤아이(주)
커뮤니티
처음으로
> 커뮤니티 > 추천도서
:: 글답변 ::
이 름
패스워드
이메일
홈페이지
제 목
내용
> > > 머리에서 발끝까지 참된 흙가슴으로 살자 > 신영복 교수의 서화에세이 <처음처럼>을 읽고 > > > > > 누군가 여행은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옮기는 것이라 했다. 아무리 많은 곳을 여행했다 할지라도 자기 우물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만큼 여행은 장소보다도 자기 생각의 지평을 여는 게 훨씬 소중한 일이다. > > 신영복 교수의 서화에세이 <처음처럼>에서는 여행과 관련하여 또다른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여행에서 가장 먼 길은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 여행하는 것이란다. 그만큼 머리에서 깨달은 것을 가슴으로 잇는 게 쉽지 않고, 설령 가슴이 뜨거워졌을지라도 발끝에까지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드물다는 이야기이다. > > 그 까닭에 줄곧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면 희망의 연대이다. 이른바 우뚝 솟아 오른 한 그루의 나무보다는 오히려 그 나무를 지탱하는 흙가슴처럼,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라나 우거진 아름다운 숲들을 내다보게 하고 있다. > > 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태양은 언제나 산에서 뜨고 산에서 진다. 바다에서 일평생 생활한 사람도 태양은 언제나 바다에서 뜨고 바다에서 진다. 넓은 평원에서 한 세월을 보낸 사람도 태양은 언제나 평원에서 뜨고 평원에서 진다. 가끔씩 이권 때문에 포용하지 못한 채 핏대를 세우며 다투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그런 주장이지 않나 싶다. > > 그러나 물은 다르다. 물은 산에서든지 바다에서든지 평원에서든지 매 한 가지다.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물이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막힌 돌담을 부딪히지 않고 에돌아 간다. 분지가 있으면 가득 채운 후 부드럽게 지나간다. 그만큼 물은 생명의 삶이요, 관용의 삶이다. 그렇기에 썩지 않는 참 물이라면 그만큼 생명력은 긴 법이다. > >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 주역 사상의 핵심입니다. 궁극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리게 되며, 열려 있으면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171쪽) > > 이른바 물처럼 참됨을 갈구하면 모름지기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하는 곳에는 열림이 있고, 열려 있으면 무엇보다 생명력이 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 땅에서 폼 내고 주름잡은 것들이 몇 년 못 되어 사라진 예들은 참 많다. 모든 찬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다가도 하루 아침에 쇠한 것들이 너무 많다. 이념도 체제도, 그에 따른 운동도 다 그러했다. > >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지구의 종말 앞에서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듯 꿋꿋하게 살아가면 된다. 그만큼 참됨의 씨앗을 뿌리면 된다. 그것을 신영복 교수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 이야기했다. > > "무성한 잎사귀 죄다 떨구고 겨울의 입구에서 앙상한 나목으로 서 있는 감나무는 비극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 끝에서 빛나는 빨간 감 한 개는 '희망'입니다. 그 속의 씨가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입니다."(229쪽) > > 그렇듯 참됨의 씨앗은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짓밟을지라도 그 생명의 숨결은 끝내 솟아오르는 법이다. 세월의 여파 속에서 그리고 희망찬 열매도 내 놓는 법이다. > >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이룰 일은 아니다. 긴긴 세월 속에서 자기 이파리들을 떨어뜨리는 스스로의 죽음을 되풀이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아흔이 넘은 노인이 산 속의 돌을 캐내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그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 > 사실 이 땅에서 참된 숲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너도나도 빼어난 한 그루 나무처럼 우뚝 서길 바라는 까닭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더군다나 혈연과 학연과 지연, 그리고 제도와 관습 등이 숲 속의 덫과 톱이 되어 그 정신과 삶을 마구 헤치고 있지 않던가? > > 그럴지라도 희망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참 물처럼, 그리고 참 씨앗처럼 궁극이 되는 참됨을 지향하고 변하고 열리고 포용하고 관용하면 그 생명력 자체가 길고 긴 희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 그렇기에 그 뜻깊은 냉철한 생각을 머리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발끝까지 이어가는 참된 흙가슴으로 연이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 때에만 이 세상을 희망의 숲으로 일굴 수 있기 때문이다. >
파일첨부
왼쪽의 글자를 입력하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