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12-01 10:14
|
글쓴이 :
 조회 : 2,421
|
남편의 사망보험금으로 10억원을 받은 여자가 눈이 부시게 푸른 전원주택에서 행복하게 세차를 하고 있는 한 보험회사의 광고를 보고 있자니 괜히 불편하고 민망했다. 나만 그런가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악담이 만만치 않더라.
‘서방 죽어 그렇게 좋냐!’거나 ‘보험설계사와 조만간 날 잡을 것 같다’ 정도는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심지어 보험설계사와 짜고 치정살인극을 저지른 게 아니냐는 독한 소리까지도…. 주변의 의견은 남자와 여자,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어졌다.
악담의 대부분은 나의 경우처럼 광고가 불편했던 남자들에게서 나온 것이고 여자들은 (남자인 나로선) 의외로 한편의 수필처럼 잔잔하고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평소 부부금실 좋기로 유명한 동료여자 작가도 그 광고를 보고 난 후 얼른 남편이름으로 생명보험 하나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급해지더란다.
자기가 죽은 후에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이 지지리 궁상으로 살길 바라는 뒤끝 제대로 더러운 남편이 몇이나 될까마는 꼭 그렇게 대놓고 까발려야 했을까 싶다.
영화 ‘스캔들’에서 나온 ‘모두들 하고 있고 모두들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있다’는 대사도 생각나더라.
아름다운 배경음악과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 광고에 쓰인 영롱한 피아노 연주곡의 제목은 ‘It’s a beautiful day’란다) 세련된 영상으로 눈과 귀를 가린다 해도 모두들 가슴 깊은 곳에 꿈틀대는 욕망을 들킨 것 같아 변명이든 비난이든 보험금 10억원을 놓고 그렇게 말이 많았던 게 아닌가 싶다.
아내의 장례식날 남편이 화장실에 몰래 숨어 아무도 모르게 웃는 이유가 뭐겠는가! 남들 보는 데서 웃었다간 친정식구들에게 심하게 맞기 때문이다.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문득 만일 그 광고 속에서 10억원을 받은 사람이 아내가 아닌 남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게 펼쳐진 골프장, 어린 아들은 서툰 스윙을 날리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골프채를 닦는 모습…. 그 위로 감미로운 남자 성우의 목소리로 ‘10억원을 받았습니다’ 클럽 하우스에 들러 휴식을 취하는 부자(父子)앞에 아내가 죽은 후 하나에서 열까지 도와주웠던 미모의 보험설계사가 나타나 이제는 그들의 생활설계사가 되어주겠다고 한다면?! 여전히 한편의 수필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인 그 광고에 여자들은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 반대로 나를 비롯한 남자들은 여전히 뒤틀린 속으로 깡소주를 마셔야 할까?
물론 남편이 10억을 받는 광고는 절대 만들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남자들은 대부분 종신보험의 1차 수급자를 아내로 지정해 놓지만 여자들의 경우 90%이상이 친정 부모님으로 정해 놓는다는 통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건 이래저래 밑지는 일이다.
|
|
